[아무것도 모르는 막내가 회장이 되다.]
밴드 동호회에 들어간 지 4개월이 채 안 된 3학년 여름방학, 세대교체를 명목으로 50명의 동호회원 대부분이 대학원생 형들로 이루어져 있는 밴드 동호회의 막내 회장을 맡게 되었습니다. 갑작스러운 결정에 어안이 벙벙하기도 잠시, 당면했던 문제들과 해야 할 일들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고 망설일 시간이 없었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몰랐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잘해야 했습니다.
[형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노력하다.]
리더의 자리였지만 아직 저를 누구인지조차 모르시는 형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처음 몇 주간을 형들께서 연주하러 오는 연주실에 거의 살다시피 하며 얼굴 알리기에 노력하였고, 합주가 끝나면 같이 맥주를 마시면서 여러 가지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려 노력했습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들으며 구조변경, 지하실 통신문제 등 개선했으면 하는 사항들이 있으면 일주일이 되기 전에 꼭 해결하는 노력을 했고, 점점 저를 좋게 봐주시는 형들이 많아지면서 더욱더 용기를 냈습니다.
[가장 골칫덩이인 소음문제를 해결하다.]
자신감을 얻으며 회장 역할에 적응을 해 갔고, 더욱 책임감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동호회에서 오랜 기간 해결하지 못했던 큰 문제에 도전하고자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것은 지하 연주실 위층 식당과의 소음갈등이 심각했고, 오랜 기간 서로의 감정의 골이 깊어 대화조차 단절된 문제였습니다. 저는 이 문제만큼은 꼭 해결하고 임기를 마치고 싶었고, 식당과의 감정을 풀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저는 먼저 끊겼던 대화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하여 자주 식당을 찾아가 정중히 대화를 요청했습니다. 처음 몇 번은 대화를 거절당하기도 하였지만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찾아갔습니다. 가끔은 동호회원들과 함께 식당에서 밥을 먹으며 소음을 체험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렇게 찾아가던 어느 날 평소 화내는 모습만 보이셨던 주인아주머니께서 하소연을 하셨고, 저는 묵묵히 들어드렸습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들으며 그제야 식당의 입장에 진심으로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저희가 생각했던 것보다 식당에서 느끼는 스트레스가 심각했던 것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동호회원들과 모여 주인아주머니에게 진심으로 사과를 드리며 저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하고 그것을 하나하나 실천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후 소리가 증폭되는 환풍로를 이불로 막고, 아주머니께서 가장 스트레스를 받는 시간대를 피해서 연주시간을 조정했습니다. 또한, 식당 모든 의자에 고무캡을 씌워 진동을 줄였습니다. 가장 진동이 많이 울리는 드럼과 베이스에는 작은 규모지만 바닥에 방진 장치도 설치했습니다.
작지만 이런 꾸준한 노력들은 주인아주머니의 마음을 여는 데 큰 도움이 되었는지 전보다 사이가 많이 좋아졌고, 저의 임기가 끝나갈 무렵에는 식당이 방음공사의 일부 비용을 지원해주기로 합의를 하는 성과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힘든 것보다 얻은 것이 더 많았습니다.]
임기를 지내면서 최선을 다해 기여한 동호회가 더 발전하는 것을 보면서 자긍심을 얻었고, 언제든지 기댈 수 있는 든든한 형들을 알게 되어 활동하지 않는 지금도 많은 도움을 얻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보람 있었던 것은 가장 오랜 기간 동호회 활동을 하신 형께서 “내가 봐왔던 회장 중에 가장 열심히 했고 잘했다.” 라는 말을 들었을 때였습니다. 그 말이 저의 평소 가치관이던 ‘포기하지 않고 한 노력은 반드시 결과물로 돌아온다.’ 라는 보편적인 말을 진정으로 믿고 실천할 수 있게 된 계기가 되었고, 그 이후로도 이를 꾸준히 실천하고 있습니다.
[이제 기아자동차에서 새로운 일꾼이 되고 싶습니다.]
이제는 50명의 동호회가 아닌 기아자동차 3만 5천 명의 임직원의 막내가 되어 기아자동차를 위해 힘쓰고 싶습니다. 이전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공장의 막내로서 꾸준한 노력을 통해 공정의 전반에 대해 철저히 공부하고, 선배님들과 생산직에 계신 분들에게 진심을 다하여 일 잘하고 똑 부러지는 관리자가 되어 기아자동차인의 자부심을 느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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