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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스 테라피] 동료가 시말서를 제출하라고 했다.

잡코리아 2022-12-12 09:00 조회수7,331

 

 

 

같은 직급인 박 과장이 김 과장에게 시말서를 제출하란다. 김 과장이 업무를 하면서 실수를 하나 했다. 사실 실수라고 부를 것도 아니다. 다른 회사에서는 다 그렇게 하는데, 이 회사가 달리 처리해왔다. 회사 규정에도 없고, 내부 품의에도 없고 어디도 근거는 없다. 고릿적부터 구전으로 내려오는 것일 뿐. 김 과장은 억울했다.

'이렇게 처리하는 게 더 문제 같은데?'

말을 꺼내면, 부원들이 잘난 척한다며 한마디씩 할 것 같다.

'미안하다고 하고 수정하자.'

부장에게 보고했다. 부장은 알았다. 수정해라. 정도에서 그쳤다. 최 과장은 난리가 났다.

"부장님 이거 이렇게 넘어가시면 어떡합니까?"

부장은 별말을 하지 않았다. 부장이 자리를 비운 사이 최 과장과 박 과장이 내 자리로 왔다.

"김 과장, 잘 모르면 물어보면서 하던가? 이게 뭡니까?"

"시말서라도 제출하세요."

김 과장은 당황스러웠다. 시말서를 왜 같은 직급에서 내라 말라 하는 거지?

'네가 부장이냐?'

김 과장은 한마디 하고 싶었지만, 부장이 판단할 문제다 싶어 참았다. 잠시 후, 부장이 김 과장을 불렀다.

"김 과장, 아무래도 이번 일 시말서를 내야 할 것 같아. 다음에는 조심하라는 뜻으로."

김 과장, 할 말을 잃는다.

 

[김 과장의 입장]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자기들이 잘못 처리해 온 걸 들이밀면서 시말서를 쓰라니 너무한 거 아닙니까? 자기들이 뭔데, 같은 동료에게 시말서를 쓰라 할 수 있는 거죠? 조직 개념이 없는 거 아닙니까?

부장도 황당하지. 아무리 읍소를 했어도 그렇지. 자기도 알 거 아닙니까?

하던 대로 하는 게 맞는 것도 아니고. 실수라고 하기도 애매한 걸 실수라고 밀어붙이고, 시말서를 제출하라니요. 부장은 허수아비랍니까? 저러니 부원들이 주제를 모르고 날뛰죠.

 

김 과장의 말이 맞습니다. 업무지시를 하는 사이가 아닌, 동료 간, 그것도 같은 직급 사이에서 시말서는 어불성설입니다. 물론 사안에서는 최종적으로 시말서는 부장이 쓰라고 지시했습니다. 외부 변화에 민감하지 않은 조직이라면, 다른 회사와 통용되지 않는 자체적인 룰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경력직이면, 텃새 못지않게, 그 회사만의 암묵적인 규율을 익히는 데 시간이 소요됩니다. 그전에는 아무리 불편하지만 물어보는 게 좋습니다. 상대방이 제대로 알려주지 않더라도, 최소한 자기방어를 위해서 물어보고 했다는 근거를 남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른 회사는 이렇게 한다.”라는 말을 고깝게 듣는 구성원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사실 대부분 그렇습니다. ‘네가 여태 해온 방식이 틀렸어.’로 들리기 때문입니다. 가뜩이나 날을 세우고 있는 상황에서 구성원들은 더 방어적이 될 수 있습니다. 김 과장이 부서원들과 섞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했을까요? 최 과장이나 박 과장에게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물어봐야 하는 걸까요? 아직 서로에 대한 반감이 높지 않은 상태라면 물어보시길 바랍니다. 벤저민 프랭클린이 정치적 원수에게 희귀 도서를 빌렸던 일화는 유명합니다. ‘내가 프랭클린에게 책을 빌려주다니, 나는 이 사람에게 호의적임이 분명해.’ 사람들은 인지부조화를 견디기 어렵기에 호의를 베푸는 나름의 이유를 머릿속에서 찾아냅니다. 도움을 요청한다는 의미는 상대방을 ‘도움을 주는 사람’으로 전제했다는 의미가 됩니다. ‘좋은 사람’을 가정한다는 뜻입니다. 상대방도 ‘긍정적인 자기 이미지’에 기분이 좋아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관계가 개선의 여지가 없고 명백히 부당하다면, 굳이 내 마음에 상처를 줘가면서 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다행히도 회사에는 ‘공식적인 프로세스’가 있습니다. 비공식적인 프로세스와 권력 관계를 잘 포착할 수 있다면 일이 수월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공식적인 프로세스를 철저하게 지키시길 바랍니다. 이 경우에는 동료가 아닌 공식적인 명령지휘관계인 부장에게 물어보고 처리를 하는 게 좋습니다. 물어보기 애매했던 사항이었다면, 본인이 그렇게 처리했던 근거와 이유를 잘 남겨두시길 바랍니다. 만약 감정의 골이 깊이 패이기 전이라면 사적으로 오해를 푸는 방법을 시도해보는 것도 괜찮습니다.

 

[최 과장의 입장]

물어보지도 않고 일을 하길래 언젠가 사고 칠 줄 알았죠. 부장이 대충 넘어가려고 해서 제가 한마디 했습니다. 부장이 아직 경험이 별로 없어요. 이거 그냥 넘어가면 다음에도 안 물어보고 처리해서 문제가 생길 텐데. 좋은 게 좋은 거다. 할 문제가 아니거든요. 아무래도 부장보다 짬밥 많은 제가 나서야죠. 김 과장 잘나가는 데서 왔다고 해서 일도 잘할 줄 알았더니, 막상 실속이 없어요. 자기가 이 회사에 대해서 뭘 압니까? 모르면 물어보고 해야지. 잘난 척 그리하더니 잘됐죠.

시말서 쓰고 나면 반성 좀 하려나요?

 

최 과장은 김 과장을 질투하고 있습니다. 부장보다 나이가 많은 나를 부장도 존중하는데, 김 과장은 아직 잘 모르면서 나대는 것처럼 보입니다. ‘질투’는 다른 사람이 잘 되거나 좋은 상황에 있을 때 미워하는 마음입니다. ‘가치 있게 생각하는 것’을 잃게 될 것이라는 우려나 두려움, 불안에서 생깁니다. 여기서 최 과장에게 가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부서 내 권력 관계에서 우위를 점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연장자로 존중받고 싶은 마음일 수도 있습니다. ‘자기과시’는 진화심리학적으로 집단에서 받아들여지고 싶은 욕구에서 기인한다고 봅니다. 집단의 멤버로 ‘인정’되고 싶은 욕구이지요. ‘자기과시→(집단의) 승인’ 과정으로 나타납니다. 최 과장은 아직 집단에 포함되지 않은 A 과장에게 ‘자기과시’를 함으로써 집단에 속한 자신을 구별합니다.6)

 

[부장의 입장]

최 과장이 경험이 많아요. 연장자라서 존중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잘 모르면 물어보고 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경고’를 하는 겁니다. 물어보고 하면 될 것을 왜 임의로 처리해서 문제를 만드는지 모르겠어요. 사이가 좋지 않더라도, 최소한 업무에 지장은 가지 않는 선에서 관계유지를 해야 할 텐데…. 한두 살 먹은 어린아이들도 아니고 이런 것까지 일일이 알려줄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부장은 최 과장의 후배입니다. 과거에는 선배들을 앞서가는 후배들이 많지 않았습니다. 기수대로 가는 분위기였죠. 공채 문화가 남아있는 회사에서 선배를 부하직원으로 데리고 있는 부장은 최 과장을 확 휘어잡기가 어렵습니다. 블레이크와 머튼은 ‘관리격자이론’에서 리더십 스타일을 과업지향적, 관계지향적으로 나누었습니다. 과업지향형은 과제 중심으로 자신과 부하직원의 활동을 조직화하는 리더십 스타일이며, 관계지향형은 부하직원의 생각을 존중하고 감정을 배려하는 것을 말합니다. 일반적으로 높은 과업중심형은 업무성과 달성에 효과적이나 구성원의 불만이 높습니다. 한편 관계지향적 스타일은 구성원끼리 원만한 관계 및 친밀감 조성에 주력합니다. 물론 둘 다 훌륭하게 잘 달성하면 최고겠지요. 부장이 과업지향적 스타일이면 덜할 텐데 부장은 관계지향적 스타일로 보입니다. 좋은 게 좋은 거다. 하니까 최 과장에게 휘둘리는 것이죠. 부장 입장에서 김 과장은 부서의 원만한 관계 유지를 위해 최 과장보다 중요한 존재가 아닙니다. 자신에게 리더십 문제가 있다는 걸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장은 김 과장에게 책임을 묻습니다. 물어보고 하지 그랬느냐고요.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를 비난하는 행위 뒤에는 ‘투사’가 있습니다. 투사란 자신의 내부에 있는 문제의 원인을 외부의 대상에게 투영하여 그 대상을 탓하는 것을 말합니다. 자신의 문제는 무의식적으로 무시하면서 그 문제와 유사하게 보이는 외부 대상에게 자신의 문제를 비쳐 보이는 현상을 말하기도 합니다.7) 이런 모습은 자기애가 강한 사람들에게 쉽게 발견됩니다. 거대한 자아를 가지기에, ‘남 탓’을 쉽게 하는 것이지요.

 
[괴로움을 겪고 있는 당신을 위한 제언]

시말서 작성은 조심해야 합니다. 부장이 시말서 작성을 요구했다면 이 자체가 업무지시이므로, 정당한 이유 없이 거부하기는 어렵습니다. 제출 거부 시 징계 사유에 해당할 수도 있습니다.8) 따라서 사건의 자초지종을 시말서라는 단어의 뜻 그대로 작성하시기 바랍니다. ‘사과와 반성의 의미’를 포함하여 다시 작성하라고 지시한다면 그러한 명령은 업무상 정당한 명령으로 보지 않습니다. 판례는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사죄한다는 내용’이 포함된 사죄문 또는 반성문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이는 헌법이 보장하는 내심의 윤리적 판단에 대한 강제로서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므로, 그러한 취업규칙 규정은 헌법에 위배되어 근로기준법 제96조 제1항에 따라 효력이 없고, 그에 근거한 사용자의 시말서 제출명령은 업무상 정당한 명령으로 볼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9)

부장이 계속해서 시말서를 반려할 경우, 해당 기록을 정확하게 남겨두시길 바랍니다. 동일한 내용을 이메일로도 같이 보내 두는 것도 좋습니다. 기록이 남으니까요.

 

6) 감정은 어떻게 진화했나, 지은이 이시카와 마사토
7) 나무위키 ‘투영’
8) 대법원 1991. 12. 24. 선고 90다12991 판결
9) 대법원 2010. 1. 14. 선고 2009두6605 판결

 

 

필자 ㅣ이세정 

필자 약력
일상에 소소한 이야기를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
- 브런치: https://brunch.co.kr/@viva-la-vida
- 출간 : <누구나 쉽게 배우는 인사노무사례 100개면 되겠니?> (공저)

 

‘오피스 테라피’ 시리즈는 매주 월요일에 찾아옵니다.
외부필자의 원고는 잡코리아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잡코리아 임동규 에디터 ldk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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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yn*** 2022-12-30

    본문의 핵심은 책임소재를 명확히 하도록 공신력이 있거나 신뢰도가 있는 방식으로 기록을 남기는것과, 사적인 이유로 사람 바보만드는 사건은 직장이라면 반드시 있으므로. 평소에 깡통이라도 알아먹을수있도록 본인을 통해서 일이 굴러간다는 느낌을 주기적으로 주는것입니다. 존중하는 시늉이라도 하라는것이죠. 답글달기

  • NV_39032*** 2022-12-13

    보통 직장에서 요구하는 시말서에는 사과와 반성의 내용이 포함되길 요구합니다. 따라서 반성이 충분하지 않을 경우 여러번 반려되는 경우가 허다한데요 이것이 업무상 정당한 명령이 아니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습니다. 좋은 정보네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답글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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