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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야간개장! 창덕궁 가기 전 반드시 알아야 할 꿀팁

잡코리아 2016-06-13 16:10 조회수3,267






 

 

 

 

 

창덕궁 알고가니?

창덕궁 야간개장 달빛기행이 오는 6월 22일까지 진행된다. 창덕궁 야간개장은 예매시작 2~3분만에 관람권이 매진 될 만큼 관람객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속담이 있듯이 알고 가면 더 아름다운 창덕궁. 창덕궁과 관련된 역사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봤다.

 

 

경복궁을 두고, 창덕궁을 새로 짓다


1392년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는 수도를 개경에서 한양으로 옮긴 뒤 조선의 최초 궁궐이 경복궁을 지었다. 태조는 8명의 아들 중 막내 방석을 후계자로 삼으려 했으나 이에 대해 왕자들과 신하들 사이에서 권력 다툼이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정도전과 같은 신하들이 살해당하는 제 1차 왕자의 난이 일어났고, 결국 정종이 왕위에 즉위했다. 정종은 왕위에 즉위하는 즉시 개경으로 수도를 옮긴다. 하지만 왕위에 큰 관심이 없었던 정종은 즉위한지 얼마되지 않아 동생인 이방원에게 왕위를 물려주게 된다.
태종으로 왕위에 오른 이방원은 다시금 한양으로 수도를 옮긴다. 태종은 경복궁을 수리하거나 화재 발생과 같은 재해에 대비하기 위해 제 2의 궁궐인 창덕궁을 건설하자고 주장한다. 항간에서는 형제의 난이 일어났던 경복궁을 태종이 꺼려했기 때문이라고도 해석한다.


아래 기록은 태종이 한양으로 재천도하면서 태종이 동전으로 점괘를 쳤다는 내용이다.


"태종이 여러 신하를 거느리고 예배한 뒤, 완산군 이천우, 좌정승 조준, 대사헌 김희선, 지신사 박성명, 사간 조휴를 거느리고 종묘에 들어가 꿇어 앉아, 이천우에게 명하여 반중에 동전을 던져 점을 치게 하니,  새 수도는  둘이 길하고 하나가 흉이었고,  송경과 무악은 모두 둘이 흉하고 하나가 길이었다. 임금이 나와 의논이 이에 정해지니, 드디어 향교동 동쪽가의 땅을 살펴 궁을 짓도록 명하고, 어가를 돌이켜 광나루에 머물러 호종하는 대신과 더불어 말하였다. “나는 무악에 도읍하지 아니하였지만, 후세에 반드시 도읍하는 자가 있을 것이다.”
[태종실록] 4년 10월 6일

 

 

창덕궁을 지은 건축가, 박자청

창덕궁은 평민출신이었던 박자청이 건축했다. 박자청은 고려시대에는 내시, 조선시대에는 궁궐을 지키는 병사였는데 건축 부분에 자질이 뛰어난 것을 인정받아 공조판서까지 오르게 된다. 공조판서란 국가의 주요 건설 공사와 산림, 도예 공방, 광산 등을 관리하는 책임자이다. 창덕궁이 자연의 미를 살릴 수 있었던 것은 박자청이 공이 컸다.


대표적인 사례를 들여다보자.
나라의 주요 행사가 열리는 창덕궁 인정전 앞마당 공사를 박자청이 담당했다. 박자청은 어느 곳보다 정교하게 꾸며져야 할 앞마당을 사다리꼴로 만들었다. 이에 태종은 노하여 박자청을 감옥에 가뒀으나 이후 창덕궁 지형의 특징을 보존하면서 동시에 최대한의 공간을 사용하기 위해서 계획적으로 설계된 것임을 알게 되었다. 무엇하나 인위적으로 조성하지 않았던 박자청의 감각과 권력 앞에서도 꺾지 않았던 우직함으로 창덕궁의 자연의 미는 극대화 될 수 있었다.


박자청은 창덕궁 건축에 그치는게 아니라 성균관 문묘, 청계천, 건릉 등 많은 문화재를 건축, 보수했고 태종의 신뢰를 받아 태종이 죽고 헌릉 조성도 담당한다.

 

 

조선시대 궁궐 중 가장 아름다운 창덕궁.


창덕궁은1610년 광해군 때부터 정궁으로 쓰이기 시작해 1868년 고종이 경복궁을 복원할 때까지 260여년 동안 조선의 왕들이 거주했던 곳이다. 임진왜란으로 모든 궁궐이 전부 불타버렸을 때, 경복궁보다 먼저 창덕궁을 복원할 정도로 창덕궁에 대한 왕들의 사랑이 지극했다.


창덕궁이 이처럼 조선시대 왕들의 사랑을 받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궁궐이라 함은 왕의 권력을 나타내기 위해 최대한 웅장하게 짓는 것이 일반적이다. 조선시대 가장 먼저 지어진 경복궁 역시 모든 건물이 질서정연하게 건축되었다. 하지만 창덕궁은 이전까지 지어진 궁의 모습과는 달리 인공의 미를 절제하고 자연과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산을 뒤에 두고 앞에는 금천이 흐르는 배산임수 지형으로 살기 편했을뿐더러, 궁 안에는 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담은 정자, 연못 등을 조성해 놓아 많은 왕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한편, 창덕궁은 한국의 정원을 대표하고 주변환경과 인공의 조화가 뛰어남을 인정받아 1997년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록됐다.

 

 

잡코리아 좋은일 연구소 ㅣ 이슬비인턴사원 drizz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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