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런 이사와 새로운 땅"
'우리집은 다음 달 중국에 간다.' 제가 중학교때 교회 목사를 하시다가 사표를 내신 아버지께서 밥상에서 하신 첫 말씀이었습니다. 저는 목회자의 집안에서 중학교때 까지 남들과 다를것 없는 평범한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아버지 께서는 젊은날 꿈을 위해 교회를 떠나 중국에서 새로운 도전을 하시기로 마음 먹으셨고, 저희 집은 이사를 갔습니다. 언어도 모르고 문화도 다른 중국 고등학교는 적응이 힘들었습니다. 모든 것을 포기할까 생각도 했지만, 그러지 않았습니다. 처음 본 중국어 시험에서 15점은 맞은 저는 그 날 이후로 중국어에 매진 했고, 3달 뒤에 대화는 물론 수업까지 중국어로 들을 수준이 됐습니다. 중국 고등학교에서의 1년은 저에게 외국어에 대한 두려움을 없에주었고, 타 문화에 대해 이해와 수용을 할 수 있게 도와 주었습니다.
"꿈을 찾다"
저는 꿈이 없었습니다. 꿈이 없었기에 가장 무난한 선택만을 하였고, 새로운 도전을 해보려 하지 않았습니다. 고등학교에서 이과를 선택했고, 대학에서 OO과를 선택한 이유도 그래서 입니다. 그렇게 군대를 가고 군대에서 꿈의 필요성에 대해 생각을 하고 막연히 꿈을 가져야 겠다는 생각으로 제대를 했습니다. 제대를 한 어느날 반도체 공정수업은 저에게 목표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반도체 담당 교수님은 수업을 어렵게 하기로 유명했는데, 유독 저는 전체를 가르치고 그 뒤에 부분을 가르치는 교수님의 수업방식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렇게 교수님의 수업을 하나 둘씩 들었고, 제 속의 이상적인 엔지니어는 어느순간 교수님의 모습이 됐습니다.
졸업과제를 마친 뒤 팀원들은 휴학을 하거나 연구에서 손을 땠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지 않고 교수님께 찾아가 연구소 인턴을 지원 했습니다. 열정을 가지고 시작한 인턴생활이었지만, 시작부터 쉽지는 않았습니다. 랩실에는 제 주제의 선행연구나 자료가 아예 없었고 책에 안 나오기에 처음으로 관련 논문과 자료를 검색하고 읽고 모아야 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관련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찾아오라고 하시던 교수님의 주문은 저에게 천청벽력 과도 같았습니다. 연구논문이나 자료에서는 시뮬레이션에 대해 언급하지 않기 때문에 성과는 없었습니다. 결국 저는 지푸라기라도 붙잡는 심정으로 연구소에 전화를 해서 해결을 하는등 자력으로 여러 문제를 해결하였습니다. 이런 모든 과정은 저에게 엔지니어에 대한 확고한 꿈을 심어 주었으며, 저의 이상적인 엔지니어 OO 교수님처럼 통찰력 있는 엔지니어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되었습니다.
"미래에 대한 생각을 하다"
인턴을 마치고 저는 엔지니어에 대해 고민을 하였습니다. 훌륭한 엔지니어가 되기 위해서는 좋은 장비와 기술력이 필요합니다. 그렇기에 저는 세계 최고의 반도체 회사인 삼성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고, 제가 원하는 모든 것을 갖춘 회사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의 미래과 발전을 위해 삼성을 선택했고, 반드시 그에 따른 보답 역시 돌아올 것이라 생각합니다. 매사에 배우는 자세로 임하겠 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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