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잘 듣는 둘째 딸이라는 타이틀은 삶의 원동력이었습니다. 칭찬받는 것이 좋았고 효도하고 싶었습니다. 주어진 일, 부모님이 원하는 것을 하며. 스무 살부터 아르바이트를 지속하는 착한 딸이었습니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은 즐거웠습니다. 금전적인 도움을 드리는 동시에 다양한 사람들과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는 동안의 주 말동무는 매니저님이었습니다. 매니저님은 주로 본인의 해외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인도 배낭여행, 독일에서 한 달 살기 등 그의 경험은 자기개발서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였습니다. ‘그때의 추억으로 현재를 살아간다.’ 매니저님이 항상 하던 이야기였습니다. 그때 든 생각은 ‘나는 지금 무슨 추억으로 현재를 살아가는가’였습니다. 말 잘 듣는 둘째 딸에게 추억이란 부모님의 기대를 맞추기 위해 공부하고, 당신들을 위해 일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새로운 경험에 대한 관심이 생겼고 이듬해 6월, 미래를 살아가기 위한 추억을 만들기 위해 휴학을 결심했습니다.
휴학과 여행에 대한 부모님의 허락을 받는 것은 역시나 어려웠습니다. 혼자 여행을 가는 것은 위험하고, 비용을 지원해 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부모님의 뜻을 거스른 적이 없었고, 현실적인 비용의 벽이 느껴져 포기할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현재에 안주하여 새로운 경험을 하지 않는다면 발전할 수 없다는 생각에 설득하기 위한 여행 포트폴리오를 제작했습니다. 여행 기간과 국가, 숙소, 그리고 이에 따른 예산을 계획했습니다. 42일간의 여행을 1시간 단위로 계획하고 지도로 이동 경로를 표현해 산입했습니다. 예산은 750만 원이었는데, 당시 시급 7530원의 천 배에 달했습니다. 때문에 학업과 병행하며 모으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과, 이를 모으기 위한 학원 근무와 저금 계획을 근거로 휴학의 의사를 밝혔습니다. 이런 노력으로 부모님의 신뢰를 얻어 여행에 대한 의지를 인정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매니저님은 여행의 과정에서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새로운 환경은 역시 많은 교훈을 주었지만 이보다 여행의 계획에서 더 많은 배움을 얻었습니다. 굳건한 의지는 하고자 하는 일의 중요한 원동력이 되고, 자신감은 스스로에 대한 신뢰에서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여행의 준비 과정은 길고 어려웠지만 철저한 계획 하에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는 믿음으로 해냈습니다. 이 경험으로 부모님의 뜻이 아닌 주체성이 판단의 우선순위가 되었고, 계획하는 습관을 길러 행하는 의지를 기를 수 있었습니다. 계획을 실천하는 생활을 할 수 있는 이유는 그로부터 얻는 결과의 가치를 알기 때문입니다. 할 수 없는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는 실천하지 않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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