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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격자소서

한국저작권위원회 2016년 상반기 신입 사무담당자합격자소서

합격자 정보

  • 고졸
  • 자격증 5개
  • 수상 5회
  • 자원봉사 5회
  • 9,698읽음

합격자소서 질문 및 내용

답변
[생활신조 : 금메달]

저는 어렸을 때까지만 해도 지금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누가 말을 걸어도 쉽게 대답을 잘 하지 않는 조용한 아이였습니다. 하지만 부모님과 연년생의 언니 덕분에 누구보다 밝은 아이가 되었고 예의를 중요시 여기는 아이로 성장하였습니다.

피아노 학원을 하셨던 어머니와 우슈 쿵푸 국가대표이셨던 아버지께 피아노와 운동을 배웠습니다. 학생들을 섬세하고 열심히 가르치시는 어머니로부터 열정을 배웠고 체육관을 운영하셨던 아버지를 어린아이였을 적부터 따라다니며 끈기를 배웠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어릴 적과는 달리 점점 운동 강도도 세지고 평소에는 한없이 자상한 아버지에서 엄격한 아버지로 변하시는 모습에 속상하여 눈물을 흘린 적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잘못한 일에 대해 이유를 알려주시며 꾸짖으셨고 나중에 조용히 불러 안아주시며 기운을 북돋아주시는 아버지의 사랑 덕분에 끈기와 사랑을 배웠습니다.

부모님의 자랑스러운 딸이 되기 위해서 시범 단으로 참여해 문화예술회관과 여러 공연장에서 시범을 보이기도 하고 겨루기뿐만 아니라 체중조절에서도 피나는 노력을 함으로 인해 포기를 모르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대회당일 아버지께서 시범단의 코치로 나오셔서 겨루기를 하기 전, 저에게 "너는 할 수 있어. 언제나 최선을 다하면 돼." 라고 하신 말씀은 지금까지도 저에게 큰 힘을 주고 있습니다. 저 자신의 땀방울을 믿으며 처음 겨루기대회를 나간 결과 제 체급 중 금메달을 딴 경험은 그 후로부터 어려운 일을 극복하는 용기를 주었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이후로 이사를 가면서 운동과 피아노를 그만두었지만 부모님께 배웠던 규칙적인 생활습관과 예의바른 태도는 저의 든든한 기반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집을 떠나 멀리 있는 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저에게 한결같은 부모님의 사랑과 응원은 꿈을 향해 도전하는 용기와 자신감의 원천이었습니다.

학교축제의 주인공으로 무대에 설 때도, 다양한 교내대회에 참가하여 실력을 발휘할 때도 열정을 불태운 저는 부모님께 한국저작권위원회 입사로 더 값진 금메달을 안겨드리는 그 순간까지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성장과정 : 마음의 안식처]

저는 기러기 가족이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가족의 소중함을 더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중학교3학년으로 올라가던 해 갑작스레 언니의 고등학교 진학이 성주의 특성화고로 결정되어 그때부터 언니를 주말에만 봐왔습니다.

일 년이 지난 후 저도 취업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언니와 같은 학교로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둘밖에 없는 딸들이 아버지, 어머니의 품을 떠나 따로 살았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버지도 대구에서 울산으로 발령을 받으시는 바람에 온 가족이 모두 흩어졌습니다.

언제나 같이 있던 가족들을 떠나 낯선 친구들 사이에서 생활하는 것에 많이 불안했습니다. 특히 고민이 있거나 힘들 때나 아플 때 나를 챙겨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 너무 서러워 많이 울기도 하였습니다. 그럴 때마다 가족을 만날 수 있는 금요일만을 기다리다 총알같이 집으로 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물론 아버지도 주말이면 집으로 내려오십니다. 365일 같이 있었을 때는 당연하게 생각했던 가족이라는 따뜻한 마음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았습니다. 온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주말의 시간들이 다시 마음을 다잡고 일주일을 시작할 수 있는 원동력이기에 너무나 소중합니다.

지금은 시간이 흘러 취업준비생인 3학년으로서 학교생활을 성실하게 보내고 주말에도 잠시의 행복을 반납하고 열심히 취업준비를 하고 있지만 기러기 가족이기에 서로의 소중함을 깨닫고 서로를 간절하게 응원해주고 있습니다.

[성격의 장단점 : 완성되어가는 나]

저는 고등학교 때 차세대리더 캠프에 참여하고 학급을 책임지는 일을 도맡아 와 리더십과 책임감이 탁월하다고 자부합니다. 부모님과 선생님께서 일처리를 부탁하시면 책임감을 가지고 빠른 시일 내에 처리하여 신뢰를 얻었습니다. 아르바이트 경험을 통해 일을 체계적이고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는 능력도 키웠습니다.

반면 정리를 잘 못하고 친언니에게 의존했습니다. 하지만 고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기숙사에 입소하여 공동체생활을 하였습니다. 그 덕에 제 주변은 물론 다른 사람의 자리까지 청소할 줄 아는 행동이 몸에 베여 단점을 보완하고 항상 단정한 사람으로 인정받았습니다.

점점 발전해나가는 저를 한국저작권위원회에 입사하여 부족함이 없는 사람으로 거듭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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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저의 재능으로 늘 학교를 빛내왔습니다. 노래와 춤의 남다른 끼를 발현하며 의미 있는 여러 활동들을 해왔습니다. 그 중 성주군에서 실시한 저 출산 캠페인 행사에 참가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저의 끼를 인정해주셔서 이 행사에 나가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권유를 해주셨습니다.

저는 춤을 좋아하고 이 캠페인을 실시하는 취지도 너무 좋아 마다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 이 캠페인에 참여하려고 마음을 먹었지만 준비 단계부터 만만치가 않았습니다. 춤에 관심이 있는 팀원을 모집하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며칠 동안 1학년부터 3학년까지 온 교실을 찾아다닌 결과 총5명이 모인 팀을 구성할 수 있었습니다. 팀원을 다 모았지만 저희 학교는 다양한 지역에서 재학 중이므로 연습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 이였습니다. 설상가상 한 살 많은 언니가 있었는데 갑작스런 부모님의 반대로 중간에 그만두게 되어 더 난감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4명이서 연습을 하게 되었고 우여곡절 끝에 노래를 고르고 춤을 배워보려고 하는데 안무선생님 없이 하려니 춤을 많이 춰본 친구들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보고 먼저 배워서 친구들에게 가르쳐주는 방법이 최선의 방법 일 것 같아 그날 이후 저는 매일 학교방과후가 끝나면 기숙사에 들어가 휴대폰으로 영상을 틀어놓고 수십 번을 되돌려 보며 연습해서 춤을 익히고 다음 날이면 팀원들에게 알려 주는 방식으로 연습을 하게 되었습니다.

주말에는 사는 지역이 다 달라서 연습하는 과정이 힘들었지만 친구들, 후배들과 함께 촉박한 시간 속 에서도 점심시간과 쉬는 시간을 쪼개어 좋은 결과를 바라는 마음으로 출산 장려 스토리를 구성하여 실력을 갈고 닦았습니다.

중간에 힘들다고 그만하고 싶다는 친구가 있었지만 저와 얘기를 하는 과정을 통해 극복하여 다시 힘차게 연습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껏 연습했던 결과물을 행사에서 하기에 앞서 저희학교 친구들 앞에서 한번 해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떨리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보여준 결과 격려와 응원을 해주어 자신감을 한층 더 얻을 수 있었습니다. 행사 날 성주의 많은 학교들이 참여하여 저 출산을 주제로 랩, 노래, 춤, 연기를 하는 등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저희 팀도 무대를 즐기며 저 출산 극복 릴레이에 참여하는 행복한 마음으로 춤을 추며 당당히 2등을 하였습니다. 준비 과정이 힘들기도 하였지만 전 세계에서 가장 심각하다는 우리나라의 출산율 저하가 극복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성공적으로 마무리하였기에 모두들 환하게 웃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러한 경험을 통해 최강의 팀워크가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나 잘났다하는 사람들을 죄다 모아놔도 손발이 안 맞아 어긋나기 시작한다면 사회라는 이름을 가진 물레방아가 잘 돌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조직을 잘 이끈다는 것은 여럿이서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개개인이 노력해 간다면 그것이 조직의 역량을 극대화시키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는 학교생활에 있어서 팀워크가 얼마나 중요한지 미리 깨달았습니다.

그 예로 합창대회와 체육대회가 있었습니다. 저희 반 친구들은 특별히 뛰어난 재능이 있는 아이들이 많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가능성이 안보였던 일이였지만 행운은 노력 뒤에 온다는 말처럼 결국은 해내고만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학교에서 여러 종류의 행사를 할 때 우리가 잘할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많은 고민 끝에 저희 반은 다른 반보다 월등히 뛰어나다고 자부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팀워크였습니다. 교우관계가 좋고 한 사람이 리드를 하면 잘 따라 와주기 때문에 열심히 항상 서로 맞춰가며 노력해왔습니다.

그 결과 항상 상위권의 자리를 지켜왔습니다. 또한 저희 학교는 학생 수가 많지 않다 보니 광복절에 함께 고등학생뿐만이 아니라 중학생과 선생님들까지 강당에서 플래시몹을 했던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한복을 입고 오는 친구들도 있었고 몸빼를 입고 오는 친구들도 있었는데 이런 경험은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나오면서도 경험하지 못한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그 날 중간에 나가서 시범을 보임으로써 자신감도 많이 생겼고 광복절에 대해서 더 잘 알게 되었습니다. 그 외에도 저희 학교에서는 추석을 맞이하여 전교생이 강당에서 윷놀이와 제기차기 등을 함으로써 요즘시대에서는 잘 하지 못했던 민속놀이를 통해 학생뿐만이 아니라 선생님들까지도 다 같이 즐길 수 있었습니다.

저는 교내·외로 다양한 봉사활동을 해왔습니다. 그 중에서도 어버이날을 맞이해 몸이 불편한 어르신들이 저희 학교에 방문해주셨습니다. 어르신들과 함께 강당에 가서 발을 씻겨드리고 매니큐어를 발라드렸는데 저희의 작은 도움으로도 고맙다고 하시는 어르신들을 보며 뿌듯하기도 하고 마음이 찡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더 도와드릴 것이 없을까 생각하다가 어르신들에게 어깨와 발마사지를 해드렸었습니다. 그때 고마워하시는 어르신들의 표정은 아직도 잊을 수 없을 정도로 가장 기억에 남는 봉사활동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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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역사의 한 페이지]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특성화고등학교에 진학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당연히 인문계로 진학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웃언니가 특성화고로 진학해 고등학교 3학년의 나이에 취업하였다는 소식을 접하였습니다.

요즘에는 좋은 명문대를 나와도 취업하는 것이 하늘의 별 따기 수준이라는 말이 익숙하리만큼 자주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특성화고로 진학해 대학교를 나와도 힘들다는 취업을 하였다는 소리를 듣는 순간 한달음에 달려가 언니에게 노력한 과정을 들으며 나도 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특성화고등학교에 진학하였습니다.

취업이라는 목표가 있는 학교생활은 정말 즐거웠습니다. 먼저 취업하는 선배들을 보며 인성부터 인사예절 등등 놓치기 쉬운 것부터 차근차근 취업준비생이라는 이름에 맞게 가꾸어갔습니다. 또한 취업이라는 문턱에 더욱 가까워지기 위해서 학교생활과 자격증 취득을 한시도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취업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노력하던 중 드디어 한국저작권위원회에 원서를 넣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한국저작권위원회라는 말은 어렵지만 들었을 때 어려워 보일 수 있지만 평소에 뉴스나 신문 등 여러 매체를 통해 자주 접해들어 친근하게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한국저작권위원회에 대해 알아보니 다양한 지식문화예술과 소프트웨어 분야의 저작권을 아우르는 저작권 전문 법정기관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창작자가 창조의 날개를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세상, 기업이 안심하고 투자할 수 있는 저작권 산업 환경, 국민 모두가 풍요롭고 행복한 삶을 가꿀 수 있는 미래를 함께 만들어가는 비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크게 공감되었습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가장 흔히 한국저작권위원회의 이름을 들었을 때가 음악불법다운로드와 영화불법다운로드로 인한 저작권 관련된 사례였습니다. TV에서도 종종 저작권으로 인해 문제가 되는 것을 봐왔습니다. 저도 저작권에 대해 잘 몰랐던 때는 불법으로 음악을 다운받고 불법으로 영화도 보고 하였지만 저작권에 대해 알게 된 후부터는 모든 것이 다 소중한 저작권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후로부턴 저희가족 모두가 정당한 가격을 지불하고 음악을 다운로드하고 영화를 관람합니다. 저처럼 우리나라 국민들 모두가 저작권에 대해 경각심을 가지고 저작권에 위배되는 행동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날이 올거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국민 모두가 저작권 종중과 나눔으로 인해 행복해지는 그날까지 한국저작권위원회와 함께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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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극복]

저는 낯선 사람을 대하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친화력을 가진 사람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평소에는 말도 잘하고 농담을 주고받을 만큼 재치가 있지만 처음 보는 사람과 대화를 하면 표정이 굳어지고 말수가 적어져서 숫기가 없다는 말을 가끔 들었습니다.

저는 이를 극복하고자 아르바이트를 시작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손님들이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오시면 큰소리로 인사하는 것이 괜히 낯부끄럽고 쑥스러워 작은 목소리로 인사를 하여 밝게 맞이하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고치고자 마음을 먹은 뒤부턴 손님이 오시면 자신감을 가지고 큰 목소리로 밝게 인사하였습니다.

이제는 밝게 대하는 것은 물론이고 손님의 말에 귀 기울여 재빨리 대처할 수 있는 재치까지 갖출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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