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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터 강일구 작가, 목표 향해 끈기 있게 나아가야

프리랜서 2015.08.18. 조회수 10,670 댓글수7 Tag #강일구 #일러스트레이터 #디자인 #삽화 #카툰

카툰 작가, 드로잉 작가, 일러스트레이터, 힐링 아티스트... 강일구 작가에게는 여러 가지 이름의 직업이 따라온다. 독학으로 그림을 시작해 프리랜서 작가가 되고, 개인전을 열고, 중앙일보에서 삽화가로 일하기까지 그는 어떤 장르나 작업의 경계선 없이 그림을 그려왔다. 예술과 현실을 이분했던 세상 사람들에게 그는 그림쟁이로서 조화롭게 사는 법을 알려준다.

 


 

연희동에서는 10년이나 지내셨어요?

네, 연희동 10년차예요. 10년 전에는 이화여대 쪽에 살다가 우연히 연희동에 오게 됐어요. 도시와 가깝지만 시골 같기도 하고 산소도 살아 있는 것 같고. 그러면서도 긴장도 돼있으면서 한적한 느낌, 산책길이 있는 게 마음에 들더라고요.

 

원래 집에 갤러리가 있었다고 들었는데요.

원래는 지하 창고와 현관문 앞쪽 통로 쪽에 미니 갤러리를 만들어서 3년 동안 운영했어요. 그런데 와이프가 지하실을 선녀탕처럼 개조하는 바람에 갤러리가 없어졌어요. (웃음) 와이프가 한다니까 막을 순 없고, 갤러리를 너무 열고 싶어서 연희동 시내 쪽 상가에 월세를 내고 갤러리를 열었어요. 계속 하고 싶었는데, 제 그림이 오랫동안 전시할 여건이 안 되는 것 같아서 고민하다가 나중에 더 좋은 걸 하려고 잠시 접었죠.

 

일러스트레이터, 카툰 작가, 드로잉 작가 등 작가님에게 붙는 말이 많더라고요.

원인은 저한테 있어요. 이삼십 대에 저를 소개하는 말을 자주 바꿨거든요. 드로잉할 때는 드로잉 작가라고 하고, 만화를 그릴 땐 카투니스트라고요. 다른 사람이 얘기한 게 아니라 스스로요. 결국은 저 하나인데, 제가 그렇게 세분화시키다 보니 다른 분들이 ‘너 정체성이 뭐야’ 하시는 거죠. 저는 제가 약간 변신을 한다고 봐요. 하지만 그렇게 조금씩 바뀐다 해도 맥은 하나고, 그 이름들에 대한 책임은 제가 지는 거죠. 굳이 어떤 것을 정의하는 것보다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게 중요하니까요.

 

언제부터 그림을 그리셨어요?

국민학교 때부터 미술부를 들었어요. 선생님이 뭐가 되고 싶은지 물으시면 주저 없이 화가가 되겠다고 했죠. 중학교, 고등학교에서도 미술부 활동을 했고 미대 입시도 준비했는데, 갑자기 딴 짓을 해보기로 했어요. 그래서 엽서로 언론 매체나 TV에 그림, 시, 표어 등을 보냈는데, 가족 오락관의 <눈을 크게 뜨세요>란 코너에서 처음 제 그림을 선보이게 됐어요. 제가 그린 그림의 일부를 보여주고 출연자와 시청자들이 어떤 그림인지 맞히는 코너였어요. 어렸을 때 TV에 출연하는 게 소원이었는데, 일찍 이룬 셈이었죠. 거기에 3번이나 출연하면서 만화 작가나 유명한 분들을 만났고, 그림 그리는 걸 본업으로 삼고 확실하게 독립하겠다고 마음먹었어요. 가족오락관 계기로 계속 공모전에 출품하다가 만화공모전에서 처음 작가로 데뷔하게 됐고, 그 핑계로 서울에 올라와 지금까지 못 내려가고 있어요.(웃음)

 

그림을 독학하셨다고 들었어요.

하나도 안 배웠다면 거짓말이겠죠. 초등학교 때부터 미술부를 했고 미대 입시를 준비하면서 학원도 한 달 정도 다니기도 했어요. 제가 미술부는 줄기차게 했지만, 학원이나 입시 시스템은 안 맞았어요.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는데, 학원 시스템을 욕하는 게 아니라 저는 정해진 틀에 맞춰 그려야 한다는 게 어린 나이에 충격이었거든요.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스스로 공부해서 등단했어요. 대학원을 가게 된 건 33살이었고요. 저는 개인적인 문제로 독학하게 됐지만, 독학은 정말 독하게 가는 길이에요. 교육을 받는 게 지름길인 셈이고요. 학교가 안 맞는다면 어쩔 수 없이 마지막에 독학을 선택하는 걸 권해요.

 

1988년에 데뷔하시고 이후 상을 많이 받으셨던데요.

정확히 세지 않았는데 4~50개 정도 돼요. 공모전에서 많이 받았는데, 그때 당시 상금이 보통 3~400만 원 정도였고 500만 원을 받은 적도 있었죠. 자꾸 받다 보니 돈에 혈안된 것 같기도 하고, 다른 후배들에게 양보해야겠다고 생각해서 국내상은 많이 안 받았어요. 이후엔 해외 쪽에서 많이 받았는데, 주로 일본이나 유럽 쪽에서 많이 받았어요.

 

직접 지원하셨던 거예요?

제가 영어는 잘 모르는데, 미치면 뭔가 보이더라고요. 영어가 보인다는 게 아니라 현상공모의 간단한 요령이 생겼다는 거죠. 그림이 확실히 갈 수 있는 주소, 원화 잘 포장하는 법, 신청서 잘 쓰는 법 등이요. 공모전들이 거의 유사하더라고요. 한 달에 많이 하면 20군데씩 보냈는데, 그러다 보니 실력도 늘고 각 국제공모전의 성격도 이해됐어요. 그 공모전의 스타일에 맞게 내 그림을 보내면 당선될 확률이 높죠.  

 

프리랜서와 직장인 일러스트레이터의 사이

 

그렇게 프리랜서로 시작해 오래 활동했는데, 직장은 어떻게 다니게 된 거예요?

제가 1년마다 유료 전시를 여는 걸 목표로 했었어요. 그래서 매년 후원받지 않고 갤러리를 대관해서 전시했는데, 2003년에 어떤 분이 갤러리에서 다른 관객과 다르게, 예사롭지 않게 그림을 보면서 뭔가를 조사하는 것 같더라고요. 그냥 관객이겠지 생각했는데 일주일 후에 중앙일보라면서 연락이 왔어요. 여러 작가를 섭외하려고 돌아다녔는데 제가 회장님께 허락 받은 최종 적임자고 한 달 이내에 회사에 모시겠다고요. 그런데 워낙 갤러리에서 이상한 얘기를 하는 사람도 많고, 나이도 당시 서른일곱이어서 포기하고 있었는데, 며칠 뒤에 또 전화가 오더니 이제 출근하라고 하더라고요. 진짜인가 하고 가봤더니 정말 연구실에 제 자리가 만들어져 있는 거예요. 그렇게 중앙일보에서 일하게 됐어요.

그 전에 1995년에 한국일보에서 삽화기자로 1년 동안 계약직으로 일할 적도 있고, 서울여자대학교에서 4년간 강의를 했던 게 중앙일보에서 일하게 된 데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그렇게 11년 정도 일했는데 회사와 합의 하에 계약을 마치고 올해부터는 작가로 다시 시작했어요.

 

른 출판, 언론 매체와 다르게 신문에는 일러스트레이터가 많지 않은 것 같아요.

2003년부터였나, 신문사에서 공채를 시작했어요. 신문사에서는 보통 일러스트레이터보다는 그래픽 디자이너를 뽑죠. 그래픽 부서에서는 삽화, 인포그래픽, 도표, 사진을 혼합한 디자인 업무를 맡는데 저처럼 일러스트만 할 수 있는, 나이든 사람을 뽑는 경우는 극히 드물어요.

전공 실기 시험은 컴퓨터로 2~3시간 동안 치르는데 테마를 주고 시간 안에 업무를 충실히 이행할 수 있는지 보는 거죠. 예전에는 4년제, 관련 전공자가 아니면 안 뽑았는데 최근에는 경향이 달라져서 실력만 있다면 고졸도 채용해요

 

처음부터 프리랜서로 활동했는데, 직장 생활을 하면서 바뀌는 게 많아 힘들지 않았나요?

보통 프리랜서면 불규칙한 생활이 몸에 밸 수 있는데 저는 아침형 인간이었어요. 밤도 잘 안 샜고요. 스스로 관리했던 거죠. 그래서 괜찮을 것 같았어요. 또 내가 아침에 회사에 도착해서 저녁까지 일할 수 있을지 궁금하기도 했고요.

 

그럼 직장생활을 하면서 힘들었던 점은 무엇이었나요?

물론 혼자 있을 때보다 힘든 점은 있죠. 회의도 해야 하고, 엠티도 가야 하고, 선후배 간 고민도 있고요. 또 부서 평균 연령이 45세 정도여서 제가 막내였거든요.

또 프리랜서도 마감이 있지만 회사에서는 3~4시간 안에 마감해야 할 때가 있어요. 준비가 안 됐어도 마감을 해줄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었죠. 애로사항도 많았지만 그래도 직장 동료다 보니까 서로 조율하면서 일했어요. 그러면서 인내심을 배웠어요. 프리랜서가 인내심이 없다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직장에서는 나만 생각할 수 없잖아요.

그래도 그런 일들로 어느 정도 보장된 월급이 나오니까 프리랜서 때는 느끼지 못했던 고정되고 윤택한 생활이랄까? 그런 점들이 있었죠. 다 장단점이 있는 거잖아요.




그림쟁이의 꿈과 현실
 

요즘 그림을 그리는 것을 직업으로 삼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 엄청 많죠. 제가 한 일러스트 온라인 사이트에 혹시 도움이 될까 해서 이야기를 들어주겠다고 한 적이 있어요. 제가 독학으로 출발해서 너무 힘들게 생활하다 보니까 혹시 다른 지망생 분들에게 도움이 될까 싶어서요. 당근도 주지만 질책도 하면서 일부러 강하게 이야기해요.

 

주로 어떤 고민들이었나요?

어떤 사람은 일러스트를 전공했지만 실력도 안 늘고 지방에서는 활동하기도 버겁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요즘은 온라인이 발달했으니 지방이냐 서울이냐 문제가 아니다. 보내준 그림을 보니 솔직히 말하면 이건 팔리는 그림은 아니다. 이걸로 생활하고 싶으면 공부해야 한다. 매체에서는 목적이 있고 대중적인 일러스트를 원한다. 본인이 하고 싶은 매체를 찾고 거기에 맞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이야기했죠.

어떤 친구는 서울로 올라와 고시원에서 힘들게 생활하는데 같이 하는 친구만 잘된다면서 그만둘까 고민 중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 친구에게는 물론 잘 될 사람은 5년 안에라도 뜨겠지만 그것보다는 본인이 왜 안 되는지 고민해 봐라. 장기적으로 봐야 한다. 주변 사람과 비교하면 처참해지기만 하니 자기개발을 더 해야 한다. 나이 더 들면 직장도 못 들어가는데, 돈 안 되는 그림 그리고 싶으면 집에서 따귀를 맞더라도 돈을 꾸든가 다른 일을 하면서 그리며 연명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죠.

한 번은 선후배 작가 모임이 있었는데 처음 보는 신인이 와서 반갑게 인사하는 거예요. 예전에 제가 그렇게 온라인으로 상담을 해준 적이 있는데, 그 얘기가 아니었으면 작가가 못 됐을지도 모른다고요. 사실 그때 답변이 기억은 안 나지만 그런 효과가 있다니 고맙고 또 무섭기도 했어요. 말 하나로 사람이 바뀔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림뿐 아니라 예체능 분야를 전공한 사람들은 돈과 하고 싶은 일 사이에서 고민을 많이 하잖아요.

세 가지 경우가 있다고 봐요. 첫 번째는 처음부터 철저하게 자기가 정한 방향대로 가는 경우. 두 번째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시간과 노력으로 완성되는 경우. 세 번째는 중구난방으로 가다가 포기하는 경우.

어설프게 하면서 돈을 벌려고 하면 망하는 일이 많아요. 어떤 선택을 하든지 노트든 마음속이든 자기가 원하는 걸 그려야 해요. 어느 대학에 갈 건지, 어떤 그림을 그릴 건지 자세히요.

 

그럼 두 가지가 필요하겠네요. 정확히 자기 목표를 아는 것, 끈기를 가지고 밀어붙이는 것.

, 그런데 보통 자기가 나갈 방향을 모르는 경우가 많죠. 그래서 일단은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방법으로 시작해 안개를 걷으면서 나가야 해요.

안타깝지만 그림을 놓치고 일을 놓쳐서 4~50대 때 이 일을 접는 사람도 있어요. 결혼을 하고 주변에서 설득하니 지쳐서 포기하는데, 그렇게 포기해서 자기가 행복하면 상관없는데 후회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작가님은 어떤 선택을 하셨나요?

제 그림은 2가지예요. 내 직장, 업이라고 생각하고 그리는 그림. 그리고 그런 일을 하면서 내가 스스로 못마땅하지 않게 순수하게 화가로서 그리는 그림, 그러니까 편집자와 상의하지 않고 수정하지 않는 그림이요.

돈과 상관없이 좋아서 하는 일과 생활을 유지해야 하는 일, 두 갈래 길을 선택하니까 불만이 덜하죠. 하나만 선택하면 포기할 확률이 많잖아요.

 

작가님이 그림을 그릴 때의 신념은 뭔가요?

저는 일러스트를 하든 창작을 하든 한 가지 확실한 게 있어요. 욕심인데, 나만의 스타일을 남기자는 거예요. 상업적 청탁이나 대중매체처럼 돈과 연결될 경우에도 제 스타일이 그림에 스며들게 해요. 사인도 반드시 넣고요. 제 그림은 저를 닮아서 누가 봐도 알아챌 수 있거든요. 부득이 빼라고 할 때도 있지만, 그래도 고집이 있어서 제가 좋아하는 색을 넣거나 공백을 넣고, 선도 일부러 가늘게 하죠.

그 동안 한 작업 중에 기억에 남는 작업은 무엇인가요?

MBC 가이드라는 사보가 있는데, 거기서는 특이하게도 삽화가도 기자와 함께 현장을 방문하고 그림을 그렸어요. 예를 들어서 배철수의 음악캠프 방송 현장에 기자와 직접 참여하고 느꼈던 걸 그리는 거죠.

그림 그리는 ​일은 아니지만, KBS 드라마에 화가로 출연한 적도 있어요. 화면에는 손만 나갔지만 작업실 소품도 봐주고 그림도 제공해줬죠. 또 유명한 여자 연예인을 만나서 얘기를 나누기도 했고요. (웃음) 이러다가 방송 진출하는 게 아닌가 하는 헛생각이 들 정도로 재밌었어요.

그러면 일하면서 힘들었을 때는 언제인가요?

프리랜서든 회사든 일이 안 돼도 ​해야 하는 상황이 있어요. 프리랜서 때는 수정을 너무 여러 번 볼 때가 있었어요. 편집을 담당하는 사람이 두세 명이었는데, 서로 의견이 충돌하니까 그걸 저한테 퍼붓는 거였죠. 결국 제가 합의점을 찾아서 마감했지만 정말 힘들었어요.

또 신문사에 있었을 때인데,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연락을 받았어요. 부고가 있으니 가야 하는데 제가 마감을 안 하고 가면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어요. 그 다음날이나 모레는 몰라도 그날 일은 제가 해야 했었어요.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있었지만 손이 안 움직이는 거예요. 상주여서 빨리 장례식장을 가야 하는데, 아이디어는 내야 하고, 머리는 하얗고, 공황장애처럼 공백 상태였죠. 자제하는 데 2~30분  시간이 걸렸는데, 그때가 가장 힘들었어요.

마지막 질문이에요. 작가님은 좋은 일이란 뭐라고 생각하세요?

부모나 가족 같은 주변에 휘말리지 말고 일해야 해요. ​연봉이 높고, 시집이나 장가 갈 때 좋다고 선택하면 안 되고, 그 말에 동의하지도 않아요. 자기 재주가 있으면 그 쪽으로 가는 게 제일 좋은 거죠. 남들한테 흔들리지 말고 자기가 성취감과 희열감을 느끼는 일을 찾아야 해요. 요즘엔 그런 걸 4~50대에 찾는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그걸 빨리 찾아야 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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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코리아 좋은일 연구소 취재기자 김현우 good@job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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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기자 김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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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희진 2015-08-19

    요즘같이 변화무쌍한 시대네 한 일만을 열정적으로 혼신을 쏟아붇는 모습이 감동적입니다~~~~ 답글달기

    • 케이윌♡ 2015-08-19

      저두요!

  • 연아 2015-08-19

    마지막 말이 참 좋네요. 남한테 흔들리지말고 성취감과 희열을 느낄수 있는 일을 찾아라!
    명심할게요~ 답글달기

  • 아침엔커피 2015-08-19

    그림 잘그리는 사람들 너무 부러워ㅠ 답글달기

  • 디대생 2015-08-19

    저도 디자인쪽이지만 일러스트가 어려워요....ㅜㅜ 답글달기

  • 222 2015-08-20

    독학하셨다니 정말 대단하시네요!! 답글달기

  • 공감 2015-08-20

    자기재주가 있는 쪽으로 가야한다는말 살면서 점점 더 공감이 됩니다. 답글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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