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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서 번역가, 작가의 스타일과 메시지를 번역하는 사람

프리랜서 번역가 2016.03.17. 조회수 19,536 댓글수3 Tag #번역가 #영어번역가 #프리랜서 #번역 #책

다른 언어권의 작품들을 독자들과 이어주는 과정에 번역가가 있다. 20년 째 번역 일을 하면서 여전히 한 문장, 한 단어를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여기며 일하고 있는 이진 번역가를 만나 번역가라는 직업과 번역에 대한 남다른 애정에 대해 들어봤다.

 




20년째 번역가로 일하며 80여권의 책을 번역했지만, 처음처럼 지금도 번역 일이 즐거워


자기소개 부탁 드려요.
안녕하세요. 영미권 소설을 번역하고 있는 번역가 이진입니다. 이 일을 시작한 지 올해로 20년이 되었는데요, 처음 시작할 때와 똑같은 열정으로 이 일을 즐기고 있습니다.


번역가를 꿈꾸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대학을 졸업하고 광고 회사에 근무하던 시절, 우연히 회사 사보의 영문 기사를 번역할 기회가 주어졌어요. 서로 다른 두 언어 사이에 다리를 놓는 일이 참 의미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문장 하나, 단어 하나를 고민하는 과정이 재미있었어요. 어려서부터 말과 글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번역이야말로 제 관심과 열정을 충족시킬 수 있는, 인생을 걸 만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루 일과를 간단히 소개해 주세요.
두세 달 단위로 마감 날짜를 맞추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만큼 철저한 시간관리가 필요해요. 하루에 할 분량을 정해놓고 반드시 지키려고 노력해요. 주로 새벽 5시 정도에 일어나 두 시간 반 정도 집중적으로 작업을 해요.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제 일에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라 그 시간이야말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죠.(웃음) 그 다음에는 아이들 학교를 보내고 집안 청소를 하고 다시 9시 반부터 12시 반까지 일을 해요. 오전시간은 주로 일에 할애하고, 주 2~3회 정도는 뭉친 근육을 풀기 위해 수영도 합니다. 오후 시간은 아이들 챙기고 집안일을 하느라 집중하기가 어렵고요. 저녁식사를 마친 뒤에 한 두 시간 정도 더 일을 합니다. 그렇게 해서 하루 평균 6시간에서 7시간 정도 일하는데, 집안 행사라든가 사정이 생겨서 일 분량을 채우지 못한 경우에는 주말이라도 채우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 동안 번역했던 책들을 소개해주세요.
<사립학교 아이들>, <658 우연히>, <페러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 <비행공포>, <제시 램의 선택>, <우리에겐 새 이름이 필요해> 등 지금까지 총 80여권의 작품을 번역했습니다. 특히, <비행공포>는 제가 직접 발굴 기획했던 책이라 저에게 큰 의미가 있는 책이에요. 몇 년에 걸쳐 편집자를 설득하고 소설 원작자인 에리카 종에게 직접 메일까지 보낸 끝에 출간하게 되었지요. 최근 번역한 <우리에겐 새 이름이 필요해>는 짐바브웨 출신의 작가가 쓴 책인데, 번역과정에서 도움을 받기 위해 만난 짐바브웨 유학생과 각별한 우정을 나누었기 때문에 기억에 남습니다.

 

 

 
번역가 준비 과정이 궁금해요.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말씀 드리자면, 저는 영문소설을 번역하고 있지만 영문학을 전공하지도 않았고, 대학원을 졸업하거나 어학연수 등을 다녀온 적도 없습니다. 사서가 되고 싶어 문헌정보학을 전공했는데 졸업해보니 실제 사서의 업무환경이 생각했던 것과 많이 달라서 좌절했어요. 그러던 차에 번역에 관심을 가지게 됐죠.
국내에는 번역가가 되기 위한 국가공인 자격시험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었고, 영문학을 전공했거나 유학을 갔다 왔다거나 하는 소위 말하는 스펙들이 실제로는 거의 의미가 없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진입하기가 어렵고, 또 어떻게 보면 누구나 도전해 볼 수 있는 분야이기도 하죠. 원문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는지, 한국어 번역문이 얼마나 매끄러운지, 그것만 중요해요.
처음엔 어떻게 시작해야 할 지 정말 막막했어요. 번역이 너무하고 싶어서 작은 출판사를 찾아가 번역할 기회를 달라고 애원해서 겨우 원고를 받았습니다. 첫 번째 번역원고는 바로 퇴짜를 맞았어요. 그래도 두 번 세 번 계속 원고를 고쳐서 다시 찾아갔죠. 요즘은 인터넷이 있으니 직접 찾아가야 하는 수고스러움은 없겠지만, 기본적으로 방식은 똑같지 않나 싶어요. 번역을 하고 싶은 사람이 자신의 번역원고를 들고 직접 출판사의 문을 두드려야 하는 시스템이죠. 준비과정이라고 말한다면 어학실력은 기본이고, 무엇보다 긴 시간을 버틸 수 있는 열정과 끈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처음 일을 시작할 때는 조건이 열악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 시기를 버티기가 쉽지 않거든요.


“번역가가 재미있게 번역한 책을 독자들도 재미있게 읽을 테니까요.”


번역 일을 선택할 때, 본인만의 기준이 있나요?
소설을 좋아하고 그 중에서도 장르 소설을 좋아합니다. 강렬하고 독특하면서 새롭고 창의적인 소설, 이야기 자체의 마법을 지닌 소설들이죠. 책장을 정신 없이 넘기면서 빨려 들어가는 작품들이에요. 책을 받아보고 서너 페이지 정도 읽었을 때 다음 전개가 정말 궁금하고 읽고 싶어 못 견디겠다는 생각이 들면 주저 없이 선택해요. 제가 재미있게 번역하는 책을 독자들도 재미있게 읽을 테니까요.
종교, 국가, 배경에 상관없이 지금까지 몰랐던 것,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겠다 싶은 책들도 무조건 선택합니다. 쉽고 간단한 책으로 권 수를 채우려고 일 한 적은 단 한번도 없어요. 제가 좋아하는 장르소설들이 대중적으로 널리 읽히고 베스트셀러가 되는 책들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게 사실이지만 좋아하는 작품이 아니면 번역을 즐겁게 할 수가 없거든요.


한국문학번역원에서 번역가 양성과정을 수료했다고 들었어요. 번역 일을 하는데 도움이 많이 되나요?
한국 소설을 영문으로 번역하고 싶으신 분들에게 국가 장학금으로 운영되는 한국문학번역원이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저 역시 영미권의 우수한 작품들을 번역하다 보니, 한국에도 좋은 작품들이 많은데 널리 번역되고 읽히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좋아하는 한국문학 작품 일부를 번역해서 외국인 친구들에게 보여줬는데, 너무 재미있고 아름답다며 감탄하더라고요. 그래서 한국문학을 영어로 번역하겠다고 마음을 먹었죠.
한국문학번역원에서 한국어 문장을 영어로 번역하는 수업을 받았고, 번역의 기술도 배웠지만 그 때까지 혼자 터득했던 제 나름의 번역 철학이라든가 이론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어서 더욱 소중한 기회였어요. 기존 번역 일과의 병행이 어려워 문학번역원에서의 학업은 잠시 중단한 상태이지만, 곧 다시 돌아가 공부를 마치고 한국 문학을 영어로 번역하겠다는 목표도 실현할 계획입니다.


번역가 일을 하며 느끼는 장단점은 무엇인가요?
집에서 하는 일이라 출퇴근이 필요 없고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자 단점이에요. 보통 소설 한 권을 잡게 되면 짧게는 3주에서 길게는 석 달까지 번역작업을 하게 되는데, 마감에 맞춰 작업시간을 조절할 수 있기 때문에 저처럼 아이들을 챙기고 집안일을 하면서도 조금만 부지런하면 얼마든지 병행이 가능합니다. 다만, 업무공간과 생활공간이 분리되어 있지 않다 보니 힘들기도 해요. 마감날짜가 다가오면 퇴근도 주말도 없이 24시간 일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죠. 집이 곧 직장이다 보니 일이 몰리면 풀리지 않는 문장이라든가 단어에 대한 고민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거든요. 혼자 하는 일이고, 의논할 상대가 없어서 어떻게 보면 고독한 일일 수도 있고요. 장시간 컴퓨터 앞에 앉아서 하는 일이라 눈이 항상 피로하고 목이나 허리에 무리가 가기도 합니다.

 

 

 
번역 일을 하면서 터득한 노하우나 번역과정이 궁금해요.
번역원고를 넘기기 전에 보통 네 번 정도 원고를 보게 되는데, 첫 단계에서는 원문에 최대한 충실한 문장으로 거칠게 번역을 합니다. 이해가 안 가는 것들, 조사가 필요한 것들은 따로 표시해두고요. 두 번째 단계에서는 원문에 충실하되 비워놓은 부분들을 채워가면서 가장 정직하고 꼼꼼한 번역 원고를 만들어요. 세 번째 단계에서는 이미 두 번 원문대조를 한 상태라 번역원고만 보면서 매끄럽게 다듬어요. 마지막으로는 글의 흐름이라든가 쉼표의 위치, 맞춤법 같은 것들이 걸리는 게 없는지 읽어보죠.
일을 시작하기 전에 결말은 되도록 보지 않으려고 해요. 다음 장이 궁금해야 번역에 속도가 붙거든요. 언어도 시대 변화에 민감하게 변화하기 때문에, 항상 영문소설 한 권과 한국 소설 한 권을 곁에 두고 읽으면서 세련된 언어 감각을 유지하려고 노력합니다.


몇 년 전에 유명한 작품을 작가가 번역하면서 ‘번역이 아니라 창작’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는데요. 직역과 의역의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직역과 의역의 문제에 대해서는 저보다 훨씬 오랜 경험을 쌓은 번역가들도 제각기 다른 의견을 갖고 있을 것 같아요. 원작자의 편에 서서 다소 딱딱하더라도 충실하게 번역하느냐, 아니면 독자의 입장에서 좀 더 매끄럽게 읽히도록 윤문을 하느냐의 문제인데, 출판사마다 편집자마다 원하는 수준이 달라요. 또, 번역가 자신의 주관이나 철학도 있기 때문에 그 부분을 잘 조율하는 것이야말로 번역가가 해야 하는 일들 중 가장 힘든 부분이 아닐까 싶어요.
저는 소설을 주로 번역하기 때문에, 문장을 번역한다기보다는 작가의 스타일을 번역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어떤 소설이든 그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메시지가 있기 마련인데, 그 메시지는 작가의 독특한 정신세계일 수도 있고, 기존 문법에서 벗어난 문장일 수도 있고, 남들이 쓰지 않는 단어의 선택일 수도 있겠죠. 작품이 지니고 있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를 반드시 충실하게 번역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바로 그 작가를 작가이게 만드는 그만의 스타일이니까요. 번역과정에서 작가만의 개성이 사라져버린다면, 독자들이나 원작자 입장에서는 엄청난 손해겠죠. 그래서 매번 새로운 책을 시작할 때면, 작품에 완전히 몰입해 그 작가의 마음이 되어보려고 노력합니다. 꿈에서도 문장이 보일 정도로요.(웃음)


어학에 대한 관심은 기본, 새로운 경험에 대한 갈증과 사교적인 성향, 지적인 호기심 필요해


번역 일을 하면서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출판사 편집부나 독자들로부터 번역에 대해 좋은 평을 들을 때 가장 보람을 느껴요.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은 작품에 용기를 내어 도전했는데, 엄청난 노력 끝에 텍스트를 완전히 이해하고 번역을 완성했을 때도 뿌듯하죠.
쉬운 작품, 익숙한 작품 보다는 제가 잘 모르는 문화권이나 시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선택하려고 노력해요. 그래야 조금이라도 더 배울 수 있을 테니까요. 지금까지 번역한 책들 하나하나가 그런 선택이었기 때문에, 참 많이 배우고 많은 것을 느꼈고, 어떻게 보면 그래서 지루할 틈도 없었던 것 같아요.(웃음)


번역가가 되기 위해선 어떤 역량이 필요한가요?
언뜻 생각하기에 번역가는 굉장히 정적이고 내성적인 사람들이 갖는 직업이라고 생각 할 수 있지만, 제 생각엔 절대 그렇지 않아요. 낯선 문화권의 책을 번역하다 보면 인터넷으로 다 찾아지지 않는 은어라든가, 그 나라 사람이 아니면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암시나 복선 같은 것들이 있어요. 그 나라 사람을 적극적으로 찾아서 직접 만나고 이야기를 들어야만 해결되는 경우가 생각보다 훨씬 많아요. 어학적 재능과 관심은 기본이고, 낯선 경험과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분들, 지적인 호기심이 있고 사교적인 성향을 지닌 분들이 오히려 이 일을 오랫동안 즐겁게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번역가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조언 좀 해주세요.
번역가는 단기간에 큰 수입을 기대할 수 있는 직업도 아니고 화려한 직업은 더더욱 아니지만,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면, 특히 가사와 육아를 병행하고자 하는 여성들에게는 이상적인 일이라고 생각해요. 평생에 걸쳐 수 많은 새로운 사람들과 세상을 만날 수 있고 항상 무언가를 배울 수 있고, 누구나 도전해 볼 수 있는 일이기도 해요. 이 일이 적성에 맞는다고 생각한다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먼 길을 돌아가야 하더라도 포기하지 마세요. 길게 멀리 보시되, 멈추지 않고 한 발 한 발 나아가세요. 반드시 꿈을 이룰 수 있을 거에요.
설령 이 일이 아니더라도, 반드시 여러분이 좋아하는 일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일에서 얻는 행복이야 말로 가장 큰 행복이고 오래 지속되는 행복이니까요. 


향후 계획이 있다면요?
일단 내년 상반기까지는 번역 일정이 꽉 차 있어요. 최소한 그 일들을 다 끝낼 때까진 다른 생각은 할 수가 없겠죠. 100권 정도 번역을 하고 난 뒤에 한국 문학작품을 영어로 번역하는 일에 집중해 볼 생각입니다. 그 이후에는 소설을 써 볼 계획이고요. 몇 년 전부터 머릿속에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떠돌고 있는데, 때가 되면 쓰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아요.


이진 번역가님이 생각하는 좋은 일이란?
내가 좋아하는 일이 나에게 좋은 일이죠. 그건 다른 사람과 같을 수도 없고 같아서도 안 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남들 보기에 좋은 일이 아니라 내가 오랫동안 즐기며 할 수 있는 일이 좋은 일이에요. 번역가라는 직업도 어떤 사람에게는 따분하고 고독한 일일 수도 있겠지만, 저에게는 20년이 지난 지금도 항상 설레고 긴장되고 행복을 주는 일인 것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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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코리아 좋은일 연구소 인턴 취재기자 박윤정 good@jobkorea.co.kr

잡코리아 좋은일 연구소
인턴 취재기자 박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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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ate 2016-03-18

    번역가라는 직업이 그림이 그려지듯 확 와 닿네요. 여러 정보들 찾아봤는데 이 글에 가장 많이 도움 받은 것 같아요!! 일에 대한 철학이 인상 깊고 많이 공감되네요~ 작가님 앞으로 작품이 더 기대됩니다~ 답글달기

  • 미래번역가 2019-12-01

    다른 언어 사이에 다리를 놓는다는 말이 정말 와닿았어요. 덕분에 번역가에 대해서 더 구체적인 고민들을 해볼수 있었네요 감사합니다 ! 답글달기

  • Claire 2022-02-28

    대학 전공부터 배우기 좋아하는 면까지... 저와 닮은 면이 많은 분이라는 생각에 별 기대 없이 읽었던 글이 많이 와닿았습니다.
    지금 제가 하고 싶어하는 일이 뭔지 잘 생각해야할 것 같아요.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답글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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