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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재미난 정보 - 과거와 현재의 공무원 시험 비교

잡코리아 2015-12-16 15:00 조회수4,941

지역균형 선발제는 조선시대에도 있었다!
조선시대 과거제도는 지역균형과 능력주의의 합리적인 제도였다. 소과에서 지역별 할당제를 실시해 인재를 선발했으며, 소과를 거쳐 능력에 따라 과거시험에 합격한 이만이 관직에 진출할 수 있었다. 지금도 우수한 지역 인재 선발을 위해 지방인 재채용목표제를 두고 있다. 원칙적으로 조선시대에는 일반 서민인 양인과 양반이 응시할 수 있었는데, 조선 초기에는 신분이 낮은 급제자의 비율이 전체의 40~50%에 이르렀다. 계급 사회였다지만 능력이 중시되는 사회였던 것. 16세기 후반부터는 세도정치가 득세하며 양반의 벼슬 세습이 이어졌으나 18세기 중반 이후 다시 양반 이외 양인들의 급제 비율이 높아졌다. 현재 공무원 시험은 3차 시험 시 철저하게 블라인드 면접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철저한 능력 평가에 의해 선발된다. 또한 현대에 와서는 성 평등을 위해 양성평등채용목표제도 두고 있다.

 

 

 

성균관 입학은 벼슬로 가는 지름길

관료로 출세하는 가장 정상적인 방법이었던 과거 합격을 위해 조선시대엔 어린 시절부터 과거 준비를 위해 교육을 받았다. 어릴 때 서당에서 유학의 기초를 배우고15~16세 전에 서울거주자는 사학(四學), 지방 거주자는 향교(鄕校)에 입학해 공부하고 과거의 소과에 합격하면 성균관에 입학할 수 있었다. 소과(小科)는 일종의 수능 시험이었던 셈. 소과는 진사시와 생원시로 나뉘어 선발했는데, 각 도별로 할당된 인원 200명을 선발했다. 진사시는 문예창작 능력을 보았으며 생원과는 사서오경에 대한 지식을 테스트했다. 진사시는 지금의 논술 같은 시험이고, 생원과는 객관식 수능시험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겠다. 꼭 사학이나 향교 교육을 거칠 필요는 없었으며, 소과에 합격만 하면 성균관에 입학할 수 있었다. 성균관을 나와야지만 문과 대과(大科)에 응시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진사나 생원이 되고도 성균관에 입학하지 않은 사람들도 얼마든지 시험은 치를 수 있었다. 꼭 대학교를 졸업하지 않아도 시험을치를 수 있는 지금의 공무원 시험과 많이 닮았다. 

 

조선시대에도 특채 있었을까?
문과의 대과는 초시(初試), 복시(覆試), 전시(殿試)의 3단계로 이루어져 있었다. 7/9급 공채의 경우는 1/2차 시험을 필기시험으로 대체하고, 3차 시험이 면접이니 3단계인 지금과 똑같다. 정기공채라 볼 수 있는 식년시의 전형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먼저 초시에서 240명을 선발하고 복시에서 33명을 선발했다. 복시 합격자 33명 전원을 최종 합격시키되 전시에서 성적순으로 등급을 정했다. 국가적 경사가 있을 때 보던 증광시 외에도 별시, 정시, 알성시, 춘당대시 등 특별채용시험이 존재했다. ‘직부전시’라고 하여 왕의 권한으로 특별히 합격시켜주는 일도 있었는데, 이는 조선왕조실록에 기록 될 정도로 아주 특이한 일이었다고. 앞의 절차를 생략하고 바로 전시를 보도록 하는 것이어서 시험을 전혀 보지 않고 관직을 받는 경우는 없었다. 직부전시는 초시 전체 장원이나 성균관 내 특별시험 1등에게 내리는 일종의 비정기 특권으로 사용됐다. 

 

공무원 재수생은 과거나 지금이나 존재
복시 합격자 33명은 성적순에 따라 갑과(甲科) 3명, 을과(乙科) 7명, 병과(丙科) 23명으로 나뉘었다. 이 성적에 따라 처음 임관되는 품계가 달라졌다. 수석인 장원 급제자는 종6품, 갑과 나머지 2명은 정7품, 을과는 정8품, 병과는 정9품부터 시작했다. 종9품/정9품/종8품/정8품/종7품/정7품/종6품 순으로 승진했으니 같은 시험에 합격했더라도 병과와 장원 급제자는 6계급 차이가 나는 셈. 지금 5급 고시와 7급 공무원 시험의 차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등수가 낮으면 고위 관직에 오르기가 어려워 합격했어도 여러 번 응시하는 경우도 많았다. 율곡 이이와 같은 경우는 ‘구도장원공’으로 불렸는데, 문자 그대로 과거시험에서 9번 장원 급제한 굉장한 수재였다.

 

  

조선시대 최고령 합격자 85세, 2013년은 56세

조선시대에는 어려운 난이도와 경쟁률 때문에 수십 년을 공부해도 과거에 합격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래도 30대 중반 정도면 합격을 했으며, 이는 7급 국가직 공무원 채용시험 최종합격자 평균 연령 30.5세와도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9급공채 합격자 평균 연령은 29.2세로 조금 낮은 편. 조선시대 최연소 장원급제 기록은 17세, 최연소 합격자 기록은 13세다. 현재 공무원 시험은 최소 연령제한이 있는 만큼 최연소 합격자는 19세. 참고로 조선시대 최고령 합격자 기록은 85세며, 2013년 서울시 공무원 공채시험 최고령 합격자는 56세다. 

 

조선시대 역과는 지금의 통역관!
오늘날 기능직과 특수 직렬은 일반행정직과 다른 시험을 보는 것처럼 조선시대도 마찬가지였다. 조선시대 과거제도는 문과/무과/잡과로 구분해 선발했으며, 무과나 잡과는 신분상 제약이 크지 않았다. 특히 잡과에는 양반이 응시하지 않았다. 이는 문(文)을 숭상하는 조선시대 경향 때문. 문과에는 같은 양반이라도 서얼 출신은 응시하지 못했다. 무과는 일종의 장교 선발 시험으로 초시, 복시, 전시 3단계로 구성됐으며 기본적으로 문과의 시험제도와 비슷하고 시험과목만 달랐다. 잡과의 과목으로는 역과(통역), 의과(한의학), 음양과(천문학/지리학/점술가), 율과(법학)가 있었다. 지금은 문과와 이과에서 1등 하는 학생들이 의대와 법대에 진학하지만 조선시대에 이들은 별로 대접받지 못했다. 역과는 다른 잡과와 달리 부를 축적하기에 용이했는데, 중국이나 일본 등 해외에 갈 경우 무역을 통해 수입을 올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역관들은 인삼 등을 팔아 경비를 조달하고 이윤을 남겨 개인 재산을 불렸다. 

 

 

나광철 기자 lio@job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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