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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시사] 칫솔부터 자동차까지...구독경제가 뜬다

잡코리아 2018-11-14 10:33 조회수5,387

 


철학자 에리히 프롬(Erich Fromm, 1900~1980)은 사회심리학의 명저로 꼽히는 『소유냐 존재냐』(To Have or to Be)에서 현대 경제체제의 성장이 ‘인간을 위해서’가 아닌 ‘체제 그 자체의 성장을 위해서 무엇이 좋은가’라는 물음에 의해 결정됐다고 지적한다.

자본주의의 자기증식을 위해 과소비는 필수적이다. 소비자가 멀쩡한 구식 휴대전화를 버리고 최신형 스마트폰으로 갈아타지 않는다면 애플이나 삼성은 성장의 수레바퀴를 돌릴 수 없다. 소비자는 온종일 매스미디어를 혈관에 꼽고 구매 욕구를 자극하는 메시지를 주입받는다.

‘들판의 아름다운 꽃을 꺾기보단 그 존재를 관조하자’는 에리히 프롬의 행복론과 결이 다소 다르지만, 만성적 경기 침체를 겪으며 자란 젊은 세대들은 전통적인 소유 관념과 멀어지고 있다. 이들이 늘 부족한 비용과 시간을 쥐어짜듯 줄이는 과정에서 공유경제(sharing economy)에 이어 최근에는 구독경제(subscription economy)란 행태가 나타났다.

구독경제는 대만계 미국 기업인인 티엔 줘 주오라 공동창업자 겸 최고경영자가(CEO)가 고안한 단어다. 일정한 요금을 내고 신문이나 잡지를 구독하듯 정기적으로 제품과 서비스를 공급받는 방식으로서 경영학계에서는 ‘구독 비즈니스 모델’이라고 부른다.

멜론이나 넷플릭스 등에서 구독료를 내고 음원과 드라마를 다운받아 본 적이 있다면 구독경제가 낯설지 않을 것이다. 다만 구독경제는 온라인 콘텐츠를 넘어 거의 모든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으며 ‘무엇을 얼마나 사야 하는가’라는 소비자의 원초적 고민을 해체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이할 만하다.

구독경제는 정기배송 모델이 등장하며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월정액을 내면 매달 한 번에 면도날 4~5개를 집으로 배송해주는 미국 스타트업 ‘달러 쉐이브 클럽’이 2011년 창업해 성공한 것이 도화선이 됐다. 이 회사는 창업 5년 만에 320만 명 이상의 회원을 확보하고 유니레버에 10억달러에 매각됐다. 비슷한 사업 모델이 칫솔, 속옷, 양말, 식료품 등 온갖 상품 분야로 확산됐다.

술도 구독해 마시는 세상이다. 미국 스타트업 후치에 매달 1만원 정도 회비를 내면 수백 개 맨해튼 술집 어디에나 들어가 매일 칵테일을 한 잔 마실 수 있다. 손님은 저렴한 가격으로 술을 마실 수 있고 보통 한잔으로 끝나는 경우가 드무니 술집도 장사가 된다.

자동차 업체들까지 구독경제에 뛰어들었다. 독일의 슈퍼카 브랜드 포르쉐는 ‘포르쉐 패스포트’라는 구독 서비스를 선보였다. 한 달에 약 220만원을 내면 박스터와 카이엔 등 포르쉐의 차량을 마음대로 골라 탈 수 있다. 현대자동차도 미국에서 매달 약 30만원을 내고 원하는 차를 선택하는 ‘현대 플러스’를 시작했다.

세계 최대 경영 컨설팅 업체인 맥킨지에 따르면 구독경제는 지난 5년간 매년 100%씩 성장했다. 맥킨지가 미국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온라인에서 쇼핑을 해본 사람 중 15%는 어떤 상품에 대한 구독 서비스에 가입했다고 답했다. 이는 넷플릭스 같은 온라인 콘텐츠 서비스를 제외한 수치다.

구독경제가 이처럼 급속도로 성장하는 이유는 소비자와 공급자 양측의 이익을 모두 충족시킨 덕분이다. 모바일과 전자 상거래기술의 발달로 소비자의 선택지는 슈퍼마켓 진열대에서 지구 면적만큼 커졌다. 신제품 정보의 홍수 속에서 전문 지식을 갖춘 구매 담당자가 소비자 대신 우수한 제품을 정해줌으로써 선택의 고민이 사라진다.

구독경제는 귀찮고 복잡하고 오래 걸리는 걸 싫어하는 20·30대들의 행태에 부합한다. 매번 정기 배송을 통해 같은 상품을 구매해야 하는 수고를 줄일 수 있고 개별 상품을 구매하는 것보다 저렴하다.

공급자 입장에서는 정기적이고 규칙적인 현금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다. 고객의 소비 형태 등 데이터를 추적·수집함으로써 개인화된 맞춤 서비스를 제공해 고객 충성도를 높일 수 있다. 현재 고객을 유지하는 비용은 신규 고객을 유치하는 비용보다 훨씬 저렴하다.

물론 구독경제에 대한 우려의 시선도 있다. 구독경제 플랫폼은 회원을 많이 모으기 위해 구독료를 최대한 저렴하게 책정해야 하므로 추가적인 수익을 올리지 못하면 손해를 입기 마련이다. 실제로 미국의 스타트업 무비패스는 영화관에서 1편 값 구독료로 매월 30편을 볼 수 있는 파격적인 서비스를 내놓고 300만 회원을 모으며 ‘오프라인판 넷플릭스’라고 불렸지만 비용 부담을 감당하지 못하고 위기에 몰렸다.

구독경제가 소유에 집착하지 않는 ‘달관 세대’들의 보편적 소비 행태로 정착할지, 혁신으로 포장된 흔한 박리다매 수법에 그칠지는 좀 더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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