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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디한국사] 하늘이 열리다, '개천절(開天節)'

잡코리아 2018-10-15 11:20 조회수5,175

 

 

우리나라 5대 국경일 중 하나인 개천절은 단군檀君이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 고조선古朝鮮을 건국한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국경일國慶日’이란 한자의 뜻 그대로 나라의 경사로운 날을 기념하기 위해 법으로 정한 경축일을 말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1949년 국회에서 3·1절(매년 3월 1일)·제헌절(매년 7월 17일)·광복절(매년 8월 15일)·개천절(매년 10월 3일) 등을 4대 국경일로 지정하였고, 2006년 단순 기념일이었던 한글날(매년 10월 9일)을 새롭게 국경일로 지정하며 5대 국경일이 되었다.1)

건국신화建國神話는 국가의 건국 과정을 신성하게 다루어 구성원들에게 신으로부터 선택된 민족이라는 ‘선민의식’을 부여하는 기제가 된다. 고조선의 건국과정을 그린 단군신화檀君神話는 고조선의 건국신화로 바로 개천절의 기원이다. 단군신화檀君神話를 전하는 현존 사료로는 『삼국유사三國遺事』, 『제왕운기帝王韻紀』, 『세종실록世宗實錄』 지리지地理志, 『동국통감東國通鑑』 등이 있다. 그중 가장 오래된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전하는 대략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위서魏書』에 이르기를, 지금으로부터 2천여 년 전에 단군왕검檀君王儉이 있어 아사달에 도읍을 정하였다. 나라를 열어 조선朝鮮이라 하니 요堯와 같은 시대이다. 『고기古記』에 이르기를 <중략> 환웅桓雄이 잠시 사람으로 변하여 웅녀熊女와 혼인하였다. (웅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니 단군왕검이라 하였다. 요임금이 즉위한 지 50년인 경인庚寅(요임금 즉위 원년은 무진戊辰년이므로 50년은 정사丁巳년이 된다. 경인년이라고 한 것은 사실이 아닌 듯하다)에 평양성平壤城을 도읍으로 정하고 비로소 조선이라 하였다.”2)

『삼국유사』보다 늦은 사료들에서 단군의 어머니가 웅녀가 아닌 환웅의 손녀로 표현되거나(제왕운기), 환인·환웅의 존재가 사라지고 단군이 곧장 하늘에서 내려와 조선을 개국하는 등(동국통감) 약간의 변형은 일어나지만, 단군으로부터 국가의 시작이 있었다는 큰 줄기는 동일하게 이어졌다. 단군의 건국일을 개천절이라 명명한 것은 그러한 인식의 반영인 셈이다. 그렇다면 개천절은 언제부터 ‘10월 3일’이었고, ‘개천절’로 부르게 되었을까?

개천절은 현재 양력 10월 3일을 기념일로 삼고 있지만, 1949년 국경일로 지정되기 이전까지 본래 음력 10월 3일이었다. 음력 10월이 상서로운 달임은 고대의 행사로부터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고조선 이후 들어선 여러 나라 중 고구려와 동예는 모두 10월에 각각 동맹東盟과 무천舞天이라는 제천행사를 국가적으로 거행하였으며, 삼한 역시 10월에 제사를 지내는 풍습이 있었다.3)

10월이 상서로운 달이었음은 이상의 내용으로 추정이 가능하다. 그러나 그 날을 정확히 ‘3일’이라고 명기한 것은 정식 사료가 아닌 19세기의 민간 신앙 기록에서 보인다. 무당의 굿거리를 그림으로 그려놓은 『무당내력巫堂來歷』이라는 19세기의 책에 “상원갑자 10월 3일에 신인神人 단군이 태백산에 내려와 신교를 세우고 백성을 가르쳤다”고 전하는 것으로 보아 10월 3일에 대한 전승이 민간에 있었음을 알게 해준다.4)

조선의 운명이 풍전등화와 같았던 구한말에 단군을 기리는 움직임은 매우 구체적으로 행해진다. 외세의 침략 앞에서 범민족적인 일체감을 도모하고 결속을 다져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이를 위해 민족의 시조로 단군이 전면에 나오게 되었다. 일본에게 대한제국의 통치권이 완전히 넘어가기 한 해 전이었던 1909년, 교명에서부터 ‘단군’을 내세운 단군교(=대종교)에 의해 음력 10월 3일 최초의 개천절 기념식이 거행되었다.5)

개천절, 개극절, 단군절, 건국기원절, 건국절, 기원절 등 행사 주체에 따라 달리 불리던 개천절은 1920년대 중반 이후 점차 개천절로 수렴되었다.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테지만 ‘개천’이라는 말의 상징성이 매우 포괄적이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줄곧 음력 10월 3일이었던 개천절은 1949년 「국경일에 관한 법률」 제정 시 양력 10월 3일이 되었다. 양력으로 하느냐, 음력으로 하느냐를 두고 토론이 벌어졌지만 상징성만 유지하고 현실성과 편의성 면에서 보편화된 양력으로 하자는 의견이 우세하여 최종적으로 양력 10월 3일이 된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그 역사성과 상징성의 회복을 위해 음력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의견도 존재한다.6)

2000년대 들어 단군과 개천절은 세계화 시대에 걸맞지 않은 과도한 민족주의의 표상으로 불리거나, 특정종교에 의해 우상숭배로 간주되어 단군 동상의 목이 잘리는 등 수난을 겪고 있다. 그들의 편협함이 놀라울 따름이다. 모든 것이 숨 가쁘게 변하는 요즘 시대에, 사라지지 않고 고대부터 이어져 온 유구한 ‘전통’을 받아들일 줄 아는 도량은 기대할 수 없는 걸까.

 

1) 여담으로 5대 국경일 중 제헌절은 유일하게 2008년부터 공휴일에서 제외되었다. 2017년 공휴일 재지정 법률안이 발의되었고, 같은 해 여론조사기관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78.4%가 제헌절의 공휴일 재지정에 찬성한다고 응답했다.
2) 『三國遺事』 卷1, 紀異1, 古朝鮮 王儉朝鮮.
3) 『三國志』 卷30, 魏書30, 東夷傳.
4) 정영훈, 2010, 「개천절, 그 ‘만들어진 전통’의 유래와 추이 그리고 배경」 『고조선단군학』23, 고조선단군학회, 408~409쪽.
5) 서영대, 2010, 「개천절과 강화도 참성단」 『東아시아古代學』23, 東아시아古代學會, 171~172쪽.
6) 박창범, 2015, 「개천절 일자(日字)와 단군조선 개국년도 문제 고찰과 제언」 『天文學論叢』30, 한국천문학회, 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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