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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코리아 2017-12-27 14:43 조회수1,345


‘이성 혐오’ 논쟁, 어떻게 볼 것인가


| “살여(女)주세요”

“전쟁과 자연 파괴를 일삼는 인류가 사라진다면 다른 종(種)은 평화를 되찾고 지구는 건강해질 것이다. 인류를 제거하라!” 공상과학(SF)물에 자주 등장하는 클리셰(cliche:상투적 인 표현을 뜻하는 문학 용어)다. 페미니즘 SF 작가로 잘 알려진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1915~1987)의 단편 소설 『체체파리의 비법』(1978)에서는 전 세계적으로 남성이 여성을 살해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외계인이 남성에게 여성을 혐오하게 만드는 바이러스를 퍼트렸기 때문이다. 외계인은 귀찮게 ‘광선총’ 쓰기보단 ‘번식’을 막는 방법으로 인류를 절멸한다. 이 소설은 최근 발생한 한 살인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서울 강남역 번화가의 건물 화장실에서 한 남자가 아무 관계도 없는 여성을 칼로 살해했다. 살인자는 “사회생활에서 여성들에게 무시당해 범행했다”고 진술했다.

피의자는 남녀 공용화장실에 숨어 처음부터 여성을 범행 타깃으로 노렸다. 범행의 동기가 여성 혐오라는 점이 알려지면서 여성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수사 당국은 이를 조현병으로 인한 ‘묻지마 범죄’라고 서둘러 단정했다. 하지만 여성들은 이 사건을 ‘여성 혐오(misogyny, 미소지니)’가 드러난 계기적 사건으로 받아들였다. 항상 “조심히 들어가라”는 말을 들어야 했던 여성들은 ‘지금까지 살아남은 게 우연’인 현실에 분노했다.

시민들이 피해여성을 추모하기 위해 강남역 10번 출구에 남긴 1000여 장의 메모지 가운데 “살여(女)주세요. 넌 살아남(男)잖아”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 ‘김치녀’와 ‘한남충’의 나라

‘추모의 장’으로 관심이 쏠린 강남역 10번 출구는 ‘남혐(남성 혐오)’와 ‘여혐(여성 혐오)’ 간 싸움터로 변질되고 말았다. 일부 시위 여성들이 현장에 있는 남성을 비하하는 구호를 외치자 “모든 남성을 잠재적 범죄자로 몰아가지 말라”며 반대 시위가 열렸고 양측 간에 욕설과 폭력이 오갔다. 온라인에서 확산된 이성 혐오가 오프라인으로까지 번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념, 세대, 지역, 빈부격차 등 다양한 분열 요소를 안고 있는 한국 사회에 나타난 새로운 유형의 갈등이다.

이성 혐오는 여성 혐오에서 비롯됐다. 여성 혐오의 역사는 가부장제만큼 오래되었다. 여성 혐오는 개인적인 가해와 피해의 문제를 초월한다. 성별 이원적 질서 속에서 여성을 정신적·물질적·신체적으로 억압하는 사회 구조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하지만 최근 수년간 온라인 공간을 중심으로 나타난 여성 혐오의 양태는 과거 여성에 대한 차별과 무시를 넘어 적대와 경멸로 비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크다. 많은 여성이 강남역 살인 사건에 심각한 반응을 보인 것은 여성 혐오의 공격성이 현실 속으로 들어왔다고 봤기 때문이다.

온라인 공간의 익명성과 파급성을 통해 여성 혐오는 조직화될 수 있었다. ‘일간베스트(일베)’ 등 극우성향 온라인 커뮤니티가 여성은 물론 성소수자, 외국인, 다문화 가정 등 사회적 약자·소수자를 비하·혐오하며 논란을 일으켰다. 단순히 한국인 여자를 지칭하던 ‘김치녀’는 일베에서 한국 여성 전체를 비하하는 용어로 변질됐고 포털 등 다른 사이트에서도 폭발적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이에 맞서 온라인 커뮤니티 ‘메갈리아’를 중심으로 남성 혐오 현상이 나타났다. 여성이 남성을 집단 구타하는 그림이 등장하는가 하면 한국 남성을 ‘벌레’라고 칭하는 ‘한남충’이란 말이 생겼다. 이는 ‘남혐’이 아니라 ‘여혐에 대한 혐오(여혐혐)’를 표출하는 미러링(mirroring:반대로 따라 하기)이란 주장도 있지만, 온라인 공간에서는 이슈가 있을 때마다 성별 간에 서로를 ‘김치녀’, ‘한남충’이라고 공격하며 삿대질하는 현상이 자주 나타나고 있다.




| 경쟁사회 속 박탈감에 이성 간 적개심 커져

한국은 문명국 가운데 여성 불평등이 가장 심한 나라다. 영국 경제지 이코노미스트가 매년 발표하는 유리천장(직장 내 성차별) 지수에서 한국은 4년 내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남녀 간 임금 격차는 14년 연속 OECD 1위를 차지했다. 글로벌 기준에는 한참 못 미치지만 과거에 비춰볼 때 대학 입학률과 사회 진출 등에서 여성의 약진이 두드러진 것도 사실이다.

철저히 남성 중심으로 진행된 한국의 정신문화에 길들여진 남성들은 여성에 대한 차별이 허물어지는 정상적인 과정에서조차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여성에게 공격적 성향을 드러낸다. 남성과 여성은 일자리를 놓고 경쟁하며 자신의 성 때문에 부당한 차별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남성은 사회 진출을 준비해야 할 기간에 군 복무를 하며 아무런 실질적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것에 분노한다. 여성은 출산과 육아로 인해 경력이 단절되는 데서 좌절감을 느낀다.

이러한 불만은 반대 성에 의해 차별받는다는 착각으로 이어지며 이성 혐오 논쟁을 키우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성 혐오를 목소리 큰 소수가 다수를 대변하는 온라인 세상의 하위문화쯤으로 여기기도 한다. 그러나 여성과 외국인에 대한 증오 발언을 일삼는 도널드 트럼프가 유력 대선 후보가 된 미국이나 극우 정당이 득세하고 있는 유럽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증오심이 파먹은 사회는 체제의 존립이 위태로울 수 있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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