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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인문학] 김환기, 거장의 예술에 대한 냉소가 무의미한 이유

잡코리아 2018-09-12 11:45 조회수4,385

 


‘붉은 점화’로 통칭되는 김환기의 ‘3-II-72 #220’이 지난 5월 홍콩에서 열린 서울옥션 홍콩세일에서 85억2996만원에 낙찰되며 한국 미술품 경매 최고가 기록을 경신했다. 직전 최고가 역시 김환기의 작품(‘고요 5-IV-73 #310’)으로 지난해 4월 65억5000만원에 낙찰된 바 있다. 이로써 근현대 미술품 최고가 10위 가운데 김환기의 작품이 1위부터 6위까지를 기록하게 됐다.

‘3-II-72 #220’은 김환기의 뉴욕시대 작품이다. 그의 작품 세계는 동경시대(1933~1937), 서울시대(1937~1956), 파리시대(1956~1959), 다시 서울시대(1959~1963), 그리고 뉴욕시대(1963~1974)로 나눌 수 있는데 뉴욕시대에 그는 구체적인 대상을 선·색·면으로 추상화했다.

낙찰가가 언론에 노출되자 대중이 보인 반응은 공격적이고 부정적이었다. 김환기 작품의 단조로운 구성을 보고 ‘나도 그리겠다’는 식이 대개다. 타워팰리스 한 채 값에 해당하는 금액에 낙찰이 이루어진 작품은 이미 미학과 경제학이 뒤섞인 무엇임이 사실이다. 그러나 대중이 현대미술에 대한 이해력이 부족하다는 것 역시 사실이다. 거장의 예술을 두고 경매가에 대한 논쟁만 이어지는 현 상황은 괜찮은 걸까?

김환기라는 예술

공산품이 아닌 예술품의 상품 가치는 작가의 예술적 가치에 크게 기인한다. ‘3-II-72 #220’은 김환기가 생을 마감하기 2년 전에 완성한 추상화로 마크 로스코(추상표현주의의 선구자로 스케일이 큰 캔버스에 경계가 모호한 색채 덩어리로 인간의 근원적인 감정을 표현한 러시아 출신의 미국 화가) 계열의 ‘색면 추상’에 해당한다. 김환기의 가치는 추상미술이라는 국제적 트렌드를 따르면서도 추상미술의 종주국인 서구와 차별화된 화풍을 확립한 것에 있다. 국제 예술에 통용되는 세계성 안에서 문인화, 민화 등이 지닌 한국 특유의 고유성을 획득하는 예술적 융합을 이룩한 것이다.

그는 캔버스에 한 점 한 점씩 번진 자국이 남게 점을 찍어 작품을 완성했다. 마치 한지에 먹이 스며들어 번져나간 수묵화와 같은 효과를 연상시키는 부분이다. 동시대 색채추상주의 작가들이 작품에서 붓 자국을 없애 빛이 발하는 듯한 시각적 효과를 냈던 것과 구별된다.

김환기의 또 다른 예술적 가치는 일명 ‘환기 블루’라고 불리는 그만의 색에 있다. 그의 후반기 작품은 대개 파란색으로 통일되는데, 그가 표현한 블루는 서구의 블루와 다르다.

서구에서 블루는 우울한 기분을 불러일으키지만 김환기의 블루는 파란 바다, 푸르고 짙은 밤하늘 과 같은 품을 가지고 있다. 셀룰리안 블루나 울트라 마린 같은 서구 명칭으로 구분 지을 수 없는, ‘쪽빛’, ‘반물빛’ 같은 단어가 떠오르는 한국의 서정이 담긴 블루다. 그의 색이 ‘환기 블루’라는 대 명사로 만들어져 통용된다는 것은 그만큼 그의 브랜드 가치가 인정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김환기 그림을 ‘나도 그릴’ 수는 없는 이유

김환기는 예술적 실천을 멈추지 않았다. 모던아트가 한국에서 채 논의되기도 전인 1900년대 초중반 그는 자신의 정체성과 예술의 본질을 탐구하기 위해 도쿄로, 파리로, 또 뉴욕으로 향했다. 예술가로서 자신의 이념과 예술의 역사에서 자신의 위치를 고민하고, 넓은 세상으로 나가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본 것이다. 그의 작품의 단조로운 구성은 결코 단조로움에 그치는 것이 아니며, 이해되지 않는다고 해서 평가절하 할 수 없는 장인의 노력이 담긴 결과물이다.

“내가 그리는 선, 하늘 끝에 더 갔을까. 내가 찍은점, 저 총총히 빛나는 별만큼이나 했을까. 눈을감으면 환히 보이는 무지개보다 더 환해지는 우리 강산.”

김환기의 일기 중 한 부분을 발췌한 구절이다.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고국의 자연을 떠올리며 세계 예술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기 위해 노력했던 화가 김환기. 우리의 화가인 그의 작품이 85억2996만원에 낙찰됐다는 소식에 의구심을 품기보다는 자긍심을 가져보는 게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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