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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디한국사] 절대 권력과 절대 부패

잡코리아 2018-05-25 16:52 조회수2,008


절대 권력과 절대 부패

‘스트롱맨의 시대’다. 4월 열린 헝가리 총선에서 ‘동유럽의 트럼프’라 불리는 빅토르 오르반 총리가 압도적인 지지 속에 4선에 성공했다. 철저히 자국의 이익을 대표하는 미국 대통령 트럼프는 대표적인 스트롱맨으로 불린다. 최근 우리나라와 이웃한 중국과 러시아도 최고지도자로 스트롱맨이 압도적 지지를 받고 있다.

지난 3월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全國人民代表大會(이하 전인대)1에서는 현 국가주석 시진핑習近平이 전원 만장일치로 국가주석·중앙군사위 주석에 재선출됐다. 또한 이번 전인대에서 국가주석의 연임 제한 조항이 폐지됨으로써 시진핑의 장기집권 기반이 마련되었다. 시진핑은 중국 공산당 총서기(작년 10월 재선출)·국가주석·중앙군사위 주석을 오로지하며 중국 내 절대 권력의 위치에 올랐다.

한편 비슷한 시기 러시아 대통령 푸틴 역시 76%의 득표율로 4선에 성공했다. 그는 2000년과 2004년 연임 후 총리로 잠시 물러났다가 2012년(이 때부터 대통령 임기 6년) 재집권에 성공하였고, 올해 다시 대권을 잡음으로써 집권기간이 2024년까지 늘어났다. 일종의 문화현상으로까지 해석되는 푸틴의 인기는 강한 소련에 대한 러시아인들의 향수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권력의 집중은 독재로 흐르기 쉽다. 잡기 어려운 만큼 손에서 놓는 것 또한 쉽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시작이 어떠했든 그 끝이 결코 아름답지 않았음을 역사는 말해주고 있다. 주변국들이 중국과 러시아를 보며 우려의 목소리를 내는 이유다. 한국사 속에서도 절대 권력의 변질과 비참한 말로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통일신라 말, 불우하게 태어났음에도 원대한 꿈을 품고 기어이 난세에서 일국을 이뤄낸 궁예弓裔. 그가 활약한 시대의 신라는 떨어질 대로 떨어진 왕권과 전국 각지에서 출몰하는 도적들로 인해 피폐하기 이를 데 없었다. 사료에 의하면 궁예는 자신의 군사들과 생사고락을 함께 했으며, 상벌에 있어 공정하고 사사로움이 없었다고 한다. 난립하는 지방 세력을 평정하고 전국의 2/3를 차지할 수 있었던 이유다.

자신의 성공에 도취된 탓이었을까. 후삼국 시대의 세 나라 중 가장 강력한 세력을 구축한 궁예는 국가의 모든 권력을 장악하고 스스로를 미륵불彌勒佛3이라 칭하며 신정적 전제주의를 추구하였다. 그는 관심법觀心法을 통해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반역자들을 색출하는 데 이용하였고, 자신이 쓴 불경佛經을 비판하는 승려 석총釋聰을 철퇴로 내리쳐 죽이기까지 하였다. 공포정치 아래에서 목이 언제 날아갈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신하들에게 충성심을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왕건을 앞세운 쿠데타 세력에게 쫓겨난 궁예는 도망가던 와중에 백성에게 피살되는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킹메이커’들이 집권 후 몰락하는 사례 역시 비일비재하였다. 조선시대 킹메이커의 몰락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 정조正祖(조선 제22대 왕, 재위 1776~1800)때의 홍국영洪國榮이다. 정조가 사도세자思悼世子의 아들로 노론 벽파(사도세자에 대한 영조의 처분을 지지했던 세력)의 견제 속에서 무사히 즉위할 수 있었던 데에는 홍국영의 공이 으뜸이었다. 오로지 정조의 즉위만을 위해 일했던 홍국영은 정조 즉위 후 29살의 나이에 일인지하만인지상一人之下萬人之上의 권력을 얻게 되었다.

당시 홍국영의 전횡이 얼마나 심하였는지 기록에는 홍국영의 방자함이 날로 극심하여 온 조정이 감히 ‘그의 뜻을 거스르지 못했다’라고 전한다.4 그는 요직에 앉아 권력을 휘두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동생을 정조의 후궁(원빈元嬪 홍씨)으로 들여보냄으로써 스스로 왕의 외척이 되었다. 그러나 원빈이 입궁 일 년 만에 후사 없이 죽자 죽음의 배후로 왕비인 효의왕후孝懿王后를 의심하면서 궁궐 내의 무수한 사람을 문초하는 등 왕의 눈치도 보지 않는 듯 행동하였고, 정조의 동생 은언군恩彦君의 아들을 원빈의 양자로 앉힌 뒤, 그를 정조의 후계로 세워 권력을 유지하려는 모습까지 보였다. 정조와 함께 외척을 척결하는 데 힘썼던 그의 모습은 이제 찾을 수 없었다.

홍국영의 오만방자함은 든든한 배경이 돼 주었던 정조의 마음까지 돌아서게 했고, 결국 정조 3년(1779), 왕에게 올린 사직 상소를 정조가 즉시 허락하면서 모든 권력을 잃고 말았다. 이때 홍국영의 사직은 스스로가 원한 것이 아닌 정조의 뜻이었다. 실각 후 그를 탄핵하는 상소가 봇물을 이루었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적이 있었나 싶게 실각한 지 1년 만에 강릉에서 허망하게 세상을 떠났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영국의 역사가이자 정치가 존 액턴(1834~1902)의 말이다. 국경을 초월하여 오랜 세월 회자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소위 ‘지도층 인사’들은 유념해야 할 것이다.

1) 중국의 최고국가기관이다. 헌법개정·법률제정·국가주석·부주석·중앙군사위 주석 등의 국가 지도자 선출 등을 행하며, 연 1회(3월) 회의가 소집된다.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全國人民政治協商會議와 함께 ‘양회兩會’라 불린다.
2) 『三國史記』 卷50 列傳10, 弓裔.
3) 석가모니불이 열반에 든 뒤 56억 7000만 년이 지나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출현한다는 미래불. 우리나라에서 미륵신앙은 어려운 현실의 도피처로 폭넓게 전승되었다.
4) 『正祖實錄』 卷7, 正祖 3年 5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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