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퓨처랩 세부메뉴

취업뉴스
시사

[45주차] 금주의 Issue & 논술

잡코리아 2017-11-13 02:30 조회수1,214


“대한민국 정체성 세워야”
VS
“친일파 위한 역사 세탁”


이슈의 배경

한국 사회를 병들게 하는 고질적인 문제점이 갈등과 분열이라는 데 반론을 제기할 사람은 많지 않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간의 갈등, 세대 간의 갈등, 최근에는 성별 갈등까지 심화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역사적 배경을 가진 이념 갈등은 뿌리가 깊다. 해방 정국에서 분단국가에 이르기까지 좌우 세력은 서로의 총칼에 피를 묻혔다. 오늘날 한국은 세계에서 스마트폰을 가장 많이 팔고 케이팝(K-Pop) 가수가 지구 반대편 팬들에게까지 사랑받는 나라가 됐다. 하지만 정치 이념에 따라 패를 갈라 싸우며 국민 통합을 이루지 못하고 국력을 소모하는 모습은 해방 정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의 이른바 보수와 진보 세력은 같은 역사적 사실을 두고도 이를 저마다의 편향된 의도에 따라 재구성하려 한다.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끝없는 대화라지만, 같은 사실을 두고도 자기 진영의 입맛에 맞는 의미를 독점하고자 ‘역사 전쟁’을 벌이고 있다. 지난 대통령 선거를 앞둔 시점에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의 일대기를 비판적인 시각에서 다룬 역사 다큐멘터리 ‘백년전쟁 프레이저 보고서’가 역사 왜곡 논란을 일으켰고 작년에는 정부가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강행하며 국론이 분열됐다.

이번에는 건국절 논쟁이다. 우리나라는 지난 1949년 10월 1일 법률 제정을 통해 매년 8월 15일을 일제 강점기에서 해방된 것과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경축하는 ‘광복절’로 기념해 왔다. 이런 광복절에 보수 여권이 건국의 의미를 부여하려 하고 있는 상황이다. 건국절 논란은 이명박정부 초기 쟁점이 되었다가 국민들의 반대 여론에 잠잠해진 바 있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8월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오늘은 제71주년 광복절이자 건국 68주년을 맞이하는 역사적인 날”이라고 언급하며 논쟁은 재점화됐다. 박 대통령이 대한민국 정부수립일인 1948년 8월 15일을 사실상 건국일로 못 박은 것이다.

이에 비해 야당과 진보 진영은 상해임시정부가 수립된 1919년 4월 11일부터 건국일로 따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박 대통령의 건국일 발언에 대해 “대한민국 정통성을 부정하는 얼빠진 주장”이라고 반박하며 논쟁이 불붙었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대한민국은 1948년 8월 15일 건국됐다”며 “진영 논리로 대한민국 건국 논리를 훼손하지 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새누리당은 아예 8월 15일을 ‘광복절 겸 건국절’로 제정하는 법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에 다시 야당이 격렬하게 반대했다. 민생은 뒷전으로 내팽개친 정치권의 역사 전쟁은 소모적인 장기전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대한민국 정부는 1919년 3·1운동 직후 독립운동가들이 선포한 상해임시정부의 정통성을 이어받았다. 국권과 영토를 되찾고 1948년 정부가 수립한 후에야 대한민국이 근대 국가의 형태를 갖추게 된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보수·진보 진영이 규정하는 건국이란 어떤 함의가 있기에 역사 전쟁으로 비화했는가.



이슈의 논점

8·15 건국절 제정 찬성:“대한민국 정체성 세워야”
돌 지난 아기도 잔치하는데 한 국가에 생일이 없다. 중·고등학교 역사책에는 대한민국의 건국이라는 표현이 없다. ‘통일이라는 민족의 염원을 저버리고 남한만의 단독 정부를 수립했다’는 자학적이고 편향된 역사관만 있다. 대한민국의 법통과 국호는 1919년 3·1운동에서 표출된 상해임시정부에서 비롯된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제헌헌법이나 현행 헌법 모두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임시정부를 계승한다고 천명했다. 이로 인해 일각에서는 대한민국의 건국절을 제정한다면 임시정부가 수립된 1919년 4월 11일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임시정부는 말 그대로 ‘임시(臨時)’ 정부일 뿐이다. 국민·영토·주권 등 국가의 3요소를 갖추지 못한 임시정부의 설립은 진정한 의미의 건국이라고 말할 수 없다. 물론 1919년 임시정부 헌법 안에도 국가의 3요소를 포함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는 현실화되지 않은 의제적 개념에 불과했다. 임시정부 국무령을 지낸 백범 김구 선생도 1945년 9월 3일 ‘내외동포에게 고함’이란 성명을 발표하면서 “이제 우리는 비로소 건국을 향해가는 과도기에 놓여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1948년 5월 10일에 남한에서만 총선거가 시행되어 5월 31일에는 최초의 국회가 열렸다. 이 제헌국회는 7월 17일에 헌법을 공포하였는데, 초대 대통령에 이승만이 당선되었다. 이어 8월 15일에 대한민국의 수립이 국내외에 선포됐다. 국가의 3요소를 갖추고 유엔 총회의 승인을 받아 대한민국이 유일한 합법 정부가 된 이때를 건국 시점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 건국절 찬반론은 표현을 둘러싼 소모적 논쟁에 불과할 수도 있다. 해방 후 최초의 정부수립을 건국 이외에 달리 무엇으로 부를 수 있겠는가.

이 같은 견해는 일제의 핍박 속에서 탄생한 임시정부가 수많은 우여곡절과 시행착오를 겪으며 건국을 이뤄냈다는 의미이지, 독립운동의 의의나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폄하하는 것이 아니다. 독립운동은 일제가 강점하고 있는 영토와 주권을 되찾기 위한 투쟁이었고 건국은 국민 투표를 통해 만든 헌법으로 근대국가의 뼈대를 설계하는 과업이었다. 8·15 건국절 제정은 대한민국의 국가 정체성을 올바로 세우는 일이기도 하다. 오늘날 남한이 북한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경제적 번영과 정치적 자유를 누리게 된 것은 자유민주주의 체제와 시장경제 질서에 뿌리를 내린 덕택이다.

해방 이후 정부가 수립될 때까지 3년간 새 국가를 어떤 이념으로 건설할 것인지를 둘러싸고 치열한 투쟁이 있었다. 오늘날 남한과 북한 체제가 가져온 결과를 놓고 볼 때 이념의 정당성과 인류 보편성에 입각해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선택한 정부수립일을 건국 시점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더욱이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절로 인정하지 않는 주장은 한반도의 유일 합법 정부인 대한민국 정부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해방의 의미를 축소하는 북한의 주장과 일맥상통한다는 점에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前文)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게 하여,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 1948년 7월 12일에 제정되고 8차에 걸쳐 개정된 헌법을 이제 국회의 의결을 거쳐 국민투표에 의하여 개정한다.



8·15 건국절 제정 반대:“친일파 위한 역사 세탁”
우리 역사에서 대한민국이란 국호가 처음으로 결정된 것은 1919년 4월 11일 상해 임시정부에서다. 1948년 8월 15일에 선포한 것은 대한민국 건국이 아니라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선포한 것이었다. 이 같은 사실은 8·15 건국절 제정을 주장하는 일부 세력이 ‘건국의 아버지’로 추앙하고 있는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남긴 기록에서도 확인된다. 이 대통령은 1948년 정부 수립 후 최초로 발간한 관보 1호에서 “대한민국은 기미년(1919년) 3·1운동으로 건국했고 1948년 민주독립국가로 재건했다”고 밝혔다. 그해 7월 24일 대통령 취임사 말미에도 “대한민국 30년 7월 24일, 대한민국 대통령 이승만”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정통성을 이어받은 현행 헌법은 전문(前文)에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명시했다. 8·15 건국절을 운운하는 행위는 초대 대통령의 역사관부터 오늘날 최상위 규범까지 철저히 부정하는 것이다. 건국절 제정론은 주로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하는 뉴라이트 계열 학자들을 통해 제기됐다. 이는 헌법에 명시된 임시정부의 법통과 선열들의 독립 정신을 폄훼하고 친일파를 건국의 주역으로 탈바꿈하려는 ‘역사 세탁’이라는 논란에서 벗어날 수 없다.

임시정부가 대한민국의 법통으로 존재하는 한, 정부수립부터 이어져온 기득권 세력의 ‘친일 혈통’은 벗어날 수 없는 굴레가 된다. 일본군 장교 출신 전 대통령을 부친으로 둔 박 대통령이 건국절 띄우기에 나선 것도 그 의도의 순수성을 의심받고 있다. 건국절을 추진하는 측에서는 국가의 구성 요소를 모두 갖추지 못했다는 이유로 임시정부를 정부로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국가의 구성 요소만으로 건국의 기원을 재단할 수 없다. 1948년 출범한 대한민국 정부 역시 국가 구성 요소를 온전히 갖추지 못했다. 당시 대한민국 정부는 북한에 대한 지배력을 상실한 상황이었다.

따라서 8·15 건국절을 채택한다면 한반도 북부를 대한민국과 무관한 역사로 단절시키고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는 「헌법」 제3조 역시 스스로 부정하는 모순에 빠지게 된다. 나아가 일제에게 주권을 빼앗긴 1910년부터 1948년 정부수립 사이 38년간을 빠뜨림으로써 대한민국의 역사가 축소되는 문제점이 있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정체성 수립을 건국의 조건으로 보는 보수적 견해 역시 정파성의 한계를 벗지 못한다. 이는 정부수립 후 독재 정권의 반공체제가 자유민주주의와 건강한 자본주의에 끼친 해악을 정당화하고 역사 인식을 냉전적 사고로 회귀하도록 할 위험성이 있다.

1948년의 제헌헌법에는 사회적 권리와 노동자의 이익균점권을 규정하는 등 사회민주주의적 내용을 광범위하게 담고 있었다. 미국이 주도한 자본주의적 질서에 독재 정권이 편입된 과정은 우리나라의 국가 정체성을 대표할 만한 건국사가 될 수 없다.





본 자료의 저작권은 잡코리아(유)에 있으며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지합니다.

의견 나누기

의견 나누기

0 / 200 등록하기

0 / 200 등록하기

다음글
[45주차] 금주의 Thema 인문학+
이전글
[44주차] 금주의 SNS 톡!톡!